"이런 식으로 작업하면 시간이 얼마나 들어야 원형으로 복원되나요?"라고 담당자에게 물었더니, "한 5년 정도"라고 한다. 눈 앞에 펼쳐진 것은 1천 년 전의 대작인 고려 불화 한 점이다. 사전 조사와 준비 계획을 마치고도 복원전문가가 5년을 돋보기와 씨름해야 하는 작업이다. 몇 해 전, 런던 출장길에 대영박물관 소장품 복원실에 들렀던 이야기다. 박물관 지하 수장고의 어둡고 꼬불꼬불한 골목길 몇 개를 지나 다시 지상의 작은 건물에 도착하니 아시아회화 복원실이 나왔다. 대영박물관에서 소장하는 4천200여 점의 한국미술품을 전수조사하고 복원하는 업무가 진행되는 현장이었다. 이 보존 프로젝트는 한국의 유명 화장품 회사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룹 회장의 미술 애호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해외 출장길에도 업무 외 짬만 나면 반드시 현지의 미술관 박물관을 꼼꼼히 살펴보는 분"이라고 했으니 이런 후원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 보존 프로젝트에 뒤따를 장기적인 파급력과 부수적인 효과를 생각해 보면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따로 있는 게 아닌 듯싶었다.

미니애폴리스 미술관은 그 규모와 소장품이 미국 최대 규모의 공공미술관 중 하나다. 꼬박 30년 전의 일이다. 그곳의 마케팅팀장에게 업무 설명을 듣다가 문득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는지 궁금해 물었다. 학부에서는 경영학, 대학원은 미술사를 전공한 후, 업무에서의 전문성을 위해 다시 석사 과정으로 심리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연이어 팀장은 "매일 같이 지역의 기업과 자산가들 그리고 일반시민의 기부를 위한 미팅과 그 준비에 모든 시간을 쏟는다"라고 했다. 기부 유치를 위한 기관의 전문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미술관 선진국들의 후원과 기부문화의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과 제도는 어쩌면 단편적인 정보로만은 그 실체를 모두 파악하기에 부족할 것이다.

선진국 가운데에서도 기부문화가 가장 활성화된 영미권의 사례보다는, 사회복지제도가 발전되어 기부지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들의 미술관 기부문화를 먼저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공공 사회복지 수준은 기부지수와 마찬가지로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진퇴양난의 형국이라더니 그런 셈이다. 더군다나 기부의 항목별 비율을 따져보아도 여전히 문화예술은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당연히 기부에 관한 우리의 환경을 제대로 관찰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기업과 개인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고 해서 우리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일이듯, 영미권 공공미술관의 사례와 통계 수치를 한국의 미술관 박물관에 쉽게 이식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별도의 재단법인을 통해 전시 프로젝트를 비롯한 여러 후원 사업을 진행하고, 국립중앙박물관 역시 긴급 소장품 매입이나 국립기관으로서 예산 운영 규정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는 다양한 분야에 기부금을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개관 당시 화제가 되었던 ‘사유의 방’ 디자인 설계가 그 대표적 사례다. 아무튼 기부 활성화를 위한 여러 제도적 법적 규정들을 세심하게 손보아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앞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문제의 발견’이고 또한 사회 전반에 걸쳐 ‘일상 속의 기부문화’가 보통 시민들에게 널리 퍼져 성숙한 기부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인식의 확산’이다.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보람과 가치는 ‘더불어함께’ 가는 길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승보 경기도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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