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옹별 철거 기념식' 개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경인고속도로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반백년 넘게 인천 원도심을 단절시켰던 옛 경인고속도로의 옹벽 철거를 하루 앞둔 4일 인천시 미추홀구 경인고속도로 전경. 정선식기자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경인고속도로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반백년 넘게 인천 원도심을 단절시켰던 옛 경인고속도로의 옹벽 철거를 하루 앞둔 4일 인천시 미추홀구 경인고속도로 전경. 정선식기자

1969년 전체 개통… 수도권 아울러
대한민국 산업화 이끈 '1등 공신'
이면엔 '원도심 쇠퇴 원인' 오명도

반백년 넘게 인천 원도심을 단절시켰던 옛 경인고속도로의 옹벽이 55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4일 인천시에 따르면 5일 미추홀구 인하대 후문 인근에서 ‘옛 경인고속도로 옹별 철거 기념식’이 열릴 예정이다.

이번에 철거되는 곳은 옛 경인고속도로 전체 10.45㎞ 중 독배로~인하대 후문(1-1단계, 1공구) 구간이다.

시는 1단계 전체 철거는 2026년말, 2단계 철거는 2029년말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옛 경인고속도로는 1967년 3월 인천항과 서울을 오가는 대규모 물동량을 처리하기 위해 착공됐다. 당시 공사비로 약 32억 원, 2014년 기준 약 1천230억 원이 투입됐고, 공사 인원만 60만 명에 달하는 초대형 공사였다.

우리나라는 1958년 일본 나고야 고속도로가 착공된 후 고속도로 건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건설 논의는 196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청으로 독일을 방문하면서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시찰한 후 이뤄졌다.

이후 1965년 1월 ‘서울·인천,서울·수원 유료도로건설계획’, 다음해 11월 ‘서울·인천특정지역건설종합계획’이 발표됐지만, 재정적·기술적 한계 등으로 반대 여론에 부딪히기도 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150달러 정도로, 고속도로 건설에 필요한 재원 확보가 어려웠고 건설 경험의 부족 등 제약이 많아서다.

그러나 결국 1967년 3월 27일 착공, 1968년 12월 21일 가좌나들목~양평동 개통, 1969년 7월 21일 인천항~가좌나들목 개통, 1973년 4월 19일 인천항 제2도크 개통 등 모든 구간이 준공됐다.

대규모 화물 운송이 가능해지면서 구로, 주안, 부평 등 수도권에 조성된 국가산업단지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1980년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 팽창으로 고속도로가 원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출·퇴근 차량 및 화물차가 증가하면서 상습적인 교통정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특히 소음·진동·매연 등 정주여건을 악화하는 문제가 심화돼 고속도로 인근에 거주하는 인천시민들이 많은 고통을 겪어왔다. 또 고속도로가 인천을 사방으로 갈라놓으며 도심을 단절, 주변지역의 쇠퇴가 심화되고 심각한 공동화 현상을 초래했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2015년 고속도 해제 구간 대상
55년만 옹벽 철거… 2029년 완료
시 "난개발 막고 조속 마무리할 것"

이에 시는 지난 2015년 12월 경인고속도로 인천구간(10.45㎞)의 관리권을 2017년께 이관하는 협약을 국토교통부와 체결했고, 수년간 협의 과정을 거쳐 지난해 5월 1공구 중앙분리대 철거 작업에 돌입할 수 있었다. 원도심을 단절시킨 옹벽은 55년만에 철거를 앞두고 있다.

다만, 인천대로 인근에 이미 주택들이 들어섰고, 기존에 이 도로를 이용하던 인천시민들도 많은 상황으로 공사가 조속히 마무리돼야 하는 문제가 있다. 또 인천대로 일반화 사업 후 인천대로 일대가 무분별하게 개별되지 않도록 철저한 개발계획도 수립해야 한다.

이와 관련 시 관계자는 "난개발을 막기 위해 현재 관련 용역을 수립 중에 있다"며 "인천시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고 있는 만큼 인천대로 철거 공사가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예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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