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주, 돌꼭두. 사진=두나무아트큐브
이경주, 돌꼭두. 사진=두나무아트큐브

"내게 있어서 책과 꼭두란 할 일을 다하고 버려진 존재에 대한 측은함이다. 잊혀진 것에 대한, 혹은 잊혀져 가는 것에 대한 ‘다시 보기’이다."(이경주 작가노트 중에서)

조각난 쇠붙이, 깨진 벽돌, 무뎌진 작두 칼날, 색바랜 꼭두각시, 자신의 쓰임을 다하고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어떤 것’들이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안양 두나무아트큐브에서 진행하는 기획 전시 ‘쓰임이 예술이 되는 순간’은 용도를 벗어나 작품이 된 물건들과 실용성을 갖춘 작품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전시 ‘쓰임이 예술이 되는 순간’. 정경아 기자
전시 ‘쓰임이 예술이 되는 순간’. 정경아 기자

박찬응, 박충의, 이경주, 이종국, 황명수가 참여해 조각, 설치, 회화 등을 선보인다. 다섯 작가 모두 이제는 활용도가 떨어진 물체들을 주 소재로 삼았지만, 전하는 메시지에는 각자의 생각과 개성이 묻어난다.

전시장 문을 열자마자 마주하는 이종국 작가의 작품은 녹슨 쇠조각과 휜 못 등 폐건축자재들을 이용, 쓰임이라는 한계성을 확장해 나간다. 그의 손을 거친 재료들은 오브제로 인테리어 소품이 되고, 연필꽂이와 같은 생활용품 등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박찬응 작가는 건축물의 일부였던 벽돌의 초상을 다룬다. 깨진 벽돌이 견고한 벽체의 하나였을 때보다 오래전 강바닥의 모래였거나 아름다운 절벽의 바위였던 시절을 그리워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제각각의 고향을 그리는 우리의 모습을 반추하게 만든다.

전시 ‘쓰임이 예술이 되는 순간’. 정경아 기자
전시 ‘쓰임이 예술이 되는 순간’. 정경아 기자

한국화, 민화를 전공한 이경주 작가는 사라져 가는 우리 것을 되살리는 작업을 선보인다. 특히, 꼭두각시에 관심이 많다. 그에게 꼭두각시는 꼭두새벽이나 꼭대기처럼 어둠을 물리치고 제일 먼저 빛을 가져오는 존재, 사물의 제일 윗부분을 관장하는 존재로 해석된다.

이 작가는 ‘돌꼭두’ 등 꼭두각시 본래의 의미를 잃지 않으면서 익살스런 표정과 아름다운 의상이 돋보이는 우리 전통 목각을 잇는 작품들을 보여준다.

나무 공예를 주로 하는 황명수 작가는 자라온 지역과 환경이 다른 나무 각각의 결을 살려 작업한다. 나무 식기와 도마 등 실생활에 쓸 수 있는 용품을 예술로 승화시켰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재판 시 사용되는 판사봉의 무게감을 의미하는 나무 망치로 이뤄진 설치 작품 ‘결정권자들’을 출품했다.

전시 ‘쓰임이 예술이 되는 순간’. 정경아 기자
전시 ‘쓰임이 예술이 되는 순간’. 정경아 기자

박충의 작가는 닳은 곡괭이와 호미 등 숭고한 노동의 가치가 축적된 연장들 위에 숟가락으로 만든 꽃을 피어낸다. 누군가의 끼니를 해결했을 숟가락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으로 태어나, 버려지고 닳았을지언정 사라지지 않고 살아있다.

이번 전시 대표작인 박 작가의 ‘바다를 들다’는 무뎌진 작두칼을 이용해 연대의 힘을 보여준다. 새벽과 같은 푸른 색이 입혀진 물고기로 분한 작두칼을 두 사람이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박 작가는 "‘바다를 들다’는 우리나라 거주 문화가 바뀌며 점차 잃어간 공동체문화의 의미를 찾는 작품이다. 이와 더불어 작업 때 농사에서 쓰이는 연장들을 많이 사용하는데, 연료 없이 사람들의 힘으로 땅을 일궜던 농기구들은 단순한 도구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 ‘쓰임이 예술이 되는 순간’. 정경아 기자
전시 ‘쓰임이 예술이 되는 순간’. 정경아 기자

전시를 기획한 김형미 두나무아트큐브 대표는 "이번 전시는 예술가가 기존 자원을 새롭게 해석·제작해 실생활에 적용하거나 쓰임의 용도를 달리 할 때, 예술의 행위가 되는 특별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면서 "쓰임을 다한 물건들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함께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구를 뛰어넘어 예술의 가치를 담은 작품들을 만나는 전시 ‘쓰임이 예술이 되는 순간’은 오는 17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정경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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