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신륵사는 남한강 변에 있는 사찰로 고려 후기에 나옹선사가 입적하자 크게 중창됐다. 조선 초기에는 세종 영릉의 원찰로 지정돼 보수와 신축이 이루어졌으며, 그 이후에도 중수가 계속되어 오늘날까지 법등을 잇고 있다. ‘팔각원당형 석조 부도’는 신륵사 서편에 있는 낮은 능선 아래에 세워져 있다. 원래는 조사당 북쪽 구릉 너머에 있었는데 1966년 11월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옮길 당시 상대석 상면과 탑신석 하면에서 사리함이 발견 수습됐다. 이 부도는 연화문이 새겨진 사각형의 지대석을 마련해 그 위에 낮은 중대석을 올렸다. 상대석은 두툼하고 큼직한 연화문을 장식했으며, 상면에는 별도의 팔각홈을 마련해 그 위에 놓이는 탑신석이 견고하게 고정되도록 했다. 탑신석은 팔각으로 2면은 자물쇠, 4면은 부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사천왕을 상징하는 범자가 새겨져 있다. 옥개석(屋蓋石; 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는 돌)은 낙수면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굵은 마루부 끝에 귀꽃을 높게 돌출시켜 장식했다. 상륜부는 간략하게 원형의 복발석과 보주석을 올렸다.

이 부도는 전체적인 조형과 양식, 수습된 사리함 등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신륵사에서 머물다가 입적한 승려의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여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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