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뀔 때 해넘이와 해돋이를 보려는 행렬들. 어제 해와 오늘의 해는 다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일상의 통과의례 같은 처음과 끝이 있어야 무엇인가 새로 열어나갈 힘이 솟는 것 같다.

새해 첫날. 제주도 여행 계획을 잡고 떠났다. 올해 팔순 되는 언니 모시고 효도 관광 어쩜 그런 의미였다. 많은 형제들 중 막내라서, 이미 부모님께서는 하늘나라 가신지는 오래 전이고 큰언니 오빠들도 구십 세가 되어 간다.

나는 제주도를 좋아한다. 계절마다 가는 곳마다 색다르다. 봄에는 드넗게 펼처진 유채꽃과 청보리 살랑살랑 꼬리치는 춤사위가 가슴 뛰게 한다. 여름에는 내가 좋아하는 탐스런 수국꽃을, 가을에는 청명한 하늘과 끝없이 하늘거리는 갈대숲, 작은 오름에서 보면 자연을 내가 다 품은 듯하여 가슴 벅참을 느낀다. 겨울은 단연 동백꽃이 좋다.

동백 수목원에 갔다. 동백꽃은 언제보아도 환상 그 자체다. 동백나무들이 수백 그루 활짝 날개를 펴고 웃는다. 바닥에는 꽃잎들이 카펫처럼 깔려있어 즈려 발고 가란다. 제주도에는 겨울이 아닌 듯 파란 하늘과 노란 들국화 꽃이 인사를 한다. 한라산 꼭대기에는 하햔 설산이 손을 흔들고 맞이해 준다. 오묘한 자연이 마음을 간질간질 만진다.

사십여 년 전, 남편이 석. 박사 공부할 때다, 등록금이 모자라면 언니한테 어렵게 전화를 하면 두 말없이 보내주었다. 예전에는 차를 살 때, 재산세 내는 사람이 보증을 서줘야 할 때도 있었다. 두 말없이 기꺼이 해 주였다. 근 오십 년 전 여고 시절, 배가 몹시 아파 맹장 수술을 해야 했다. 의사였던 형부께서 수술을 해 주었다. 그 때 수술한 흔적이 지금도 훈장처럼 내 몸에 남아있다. 그 형부도 계셨더라면 그런 생각도 했다. 돌아 가셨지만 문득,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보고 싶다. 막내라 예뻐했는데.

아직은 걸을 수 있을 때이기에 함께 갈 수 있는데 까지 가보고 싶다. 아등바등 살아온 날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세월은 흐르는 강물처럼 쉬임없이 흘러가지만 돌아다보면 다시 가고픈 시절도 있었다. 그 길 막바지에 무지개처럼 떠오르는 새 날이 있기를 가슴깊이 새겨두고 싶다.

김주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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