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대로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된다면 2040년 전후에는 아마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미 UN도 이런 경고를 계속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대응은 매우 더디기만 하다. 에너지의 대전환, 온실가스 감축, 친환경교통수단 개발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은 증가하고 있다. 펜데믹으로 인해 세계 경제가 멈춰 섰던 2020년 전후에만 총량이 줄었을 뿐이다. 이미 전 세계가 1.5도 상승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예상하건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가뭄과 홍수, 태풍, 산불, 해수면 상승 등 기후이상 현상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또 그 강도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해당 지역의 생활터전을 파괴하고 그 곳 주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뿐 아니라 식량위기, 기후난민 등으로 주변 및 지구 전체에 여러 가지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국경을 걸어 잠근다든가,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러한 위기 상황을 더욱 부채질하는 꼴이 되며, 인류의 멸종 시기를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기후위기가 심해질수록 마치 우주전쟁을 치르듯 전 세계가 운명공동체임을 깨닫고 단합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인류는 아직 이런 고도의 문명을 갖지 못했다. 우리라는 개념을 크게 확대해도 국가 정도만 포함될 뿐이다. 마치 어린 아이가 우리라는 개념 안에 자기 집과 동네 정도 생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우쭐대던 인류가 이룩한 경제발전과 문명의 진화가 이렇게 지구생태계를 파괴하고 수많은 생물종을 멸종시키고 결국은 자신도 멸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우리가 한 평생을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조국을 위해 더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해 왔건만 그것이 결국 우리 후손들에게 파괴된 삶의 터전을 물려주는 꼴이라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가.

인류가 지금까지 이룩한 것들을 이렇게 허무하게 만들어 버릴 순 없다. 억울하지만 다시 신발 끈을 동여매고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비록 우리의 힘은 미약하지만 적어도 훗날에 파괴의 주범이 아니라 그래도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던 자로 기억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그토록 세상을 위해 행했던 모든 것들이 결과적으로 파괴행위가 되지 않도록 해야 되지 않겠는가.

이미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우리 모두는 작은 기후행동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술을 많이 마셔 알코올중독자가 되었다면 술부터 끊는 것이 정상인의 행동이다. 온실가스배출로 기후위기가 닥쳐 인류가 멸망으로 간다는 진단을 받았으면 당장 탄소감축을 실천해야 한다. 여전히 정부는 규제적 탄소시장만을 관리하기도 벅찬 느낌이다. 탄소감축이 많이 이루어지는 규제시장을 관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처럼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 운동을 하듯 작은 탄소감축을 유의미하게 만들어야만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금모으기가 외환위기 극복에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개인재산을 내 놓을 만큼 강력했던 공동체 정신은 외환위기 극복의 중요한 정신적 토대가 되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기후위기 극복도 기술적인 탄소감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개인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지는 작은 기후행동이다. 기후행동가가 많아지면 정치인이 반응하고 그렇게 되면 정책당국이 움직인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문명의 대변화시기에는 반드시 민중혁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사회에 응축된 변화의 에너지가 이를 억제하는 기득권의 압력을 이겨낼 때 세상은 새로운 문명으로 진화되었던 것이다. 과거에는 이 같은 에너지가 피의 혁명으로 분출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디지털세계라는 새로운 세계를 통해 얼마든지 하나의 이념을 공유할 수 있다. 한류가 전 세계에 사랑받는 이유도 이런 지구시민의 절실한 마음을 한류가 아우르는 것은 아닐지. 따라서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인류공영이 가능한 새로운 상식을 위해 행동하고 그렇게 만드는 일이다. 그 첫 걸음이 바로 기후행동이다. 기후행동은 공동체 의식을 낳고 이것이 확대되어 인류공동체 의식을 갖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지구촌 모두를 이롭게 하는 운명공동체로서 지속가능발전이 가능한 새로운 문명세계로의 도약이 가능해 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 보는 것이다.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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