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역대 어느 국왕보다 학문을 사랑했던 정조. ‘독서대왕’ 또는 ‘공부의 신’이라 불릴 만큼 책사랑이 대단했던 정조는 특히, ‘훌륭한 문장력’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정조는 왜 그렇게 문장이라는 글쓰기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또, 그가 남긴 글과 글씨에는 어떤 방식으로 ‘애민사상’과 ‘개혁정신’이 담겨 있을까? 수원화성박물관(관장 한동민)이 정조대왕 탄신 270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특별전 자료를 통해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박종보 사 정조어찰첩 표지. 사진=수원화성박물관
박종보 사 정조어찰첩 표지. 사진=수원화성박물관

바쁜 정무에도 가족들 안부 챙겨 
처남·큰 외숙모·누이동생·딸 등 
수많은 편지 속 염려·애정 '절절' 
따뜻하고 살뜰한 모습 엿보여

백성을 위한 국정운영에 있어 세세하고 꼼꼼했던 정조의 성격은 가족들을 대할 때는 세심함으로 발현됐다.

정조는 바쁜 정무속에서도 수많은 왕실의 일원 한명 한명을 챙기며 안부를 묻는다. 가족의 안부를 물었던 수많은 편지들이 남아있으며 가족들과 주고 받은 서신에서는 그들에 대한 염려와 애정이 묻어나온다.

내용은 소탈하기 그지 없어 내용만 본다면 임금이 아닌 다만 누군가의 오빠이자 형과 같이 가깝게 느껴진다.

특히 처남 박종보(1760~1808)와 주고 받은 3통의 편지 내용을 보면 가까운 동네 형과 같은 분위기를 풍겨와 더욱 친근한 모습이 보인다.

박종보 사 정조어찰첩 1번 편지
박종보 사 정조어찰첩 1번 편지

1번 편지

"여신(汝臣, 박종보의 자)에게, 요즘 아프다니 빨리 낫도록 하여라, 언제나 출입할 수 있느냐 염려되어 안타깝구나 춘부장(장인) 여행 중 소식은 혹시 들었느냐 이만 줄인다. 보은(報恩) 관아 편지는 인편을 기다려 보내라 번거로워 이름은 생략한다."

박종보 사 정조어찰첩 2번 편지
박종보 사 정조어찰첩 2번 편지

2번 편지

"여신에게, 밤에 편안했느냐 시경강의 범례는 살펴볼 것이 있으니 이 하인편에 보내주어라 내일 저녁 식사후에 들어오너라 이만 줄인다. 당일 이름은 생략한다."

박종보 사 정조어찰첩 3번 편지
박종보 사 정조어찰첩 3번 편지

3번 편지(낙동으로 즉시 전하라)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 모레 거둥(임금의 나들이)과 겹치니 거둥을 마친 뒤에 편한대로 들어오라 몇가지를 보내니 받으라 이만 줄인다. 말린 숭어 1마리, 생선젓 1항아리, 굴비와 조기 1묶음"

편지의 내용을 보더라도 박종보와 정조는 자주 대면하며 격의 없이 지낸 듯 보인다.

3번 편지에 적힌 낙동은 현재의 서울 회현동 인근으로 박종보의 본가이다. 1787년 정조가 유빈박씨와 가례를 치르고 박종보의 부친 박준원에게 하사한 집이 이곳에 있었다.

1번 편지에 등장한 보은(報恩)은 장인인 박준원을 이른다. 그는 1788년부터 1790년까지 보은 현감을 지냈다. 해당 어찰은 이 무렵에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시경강의의 범례를 살펴보겠다고 하면서 인편에 보내달라고 한 내용에서는 경서에 대한 정조의 관심을 엿볼 수도 있다.

정조가 큰 외숙모(홍낙인의 처)에게 보내는 한글어찰. 사진=국립한글박물관
정조가 큰 외숙모(홍낙인의 처)에게 보내는 한글어찰. 사진=국립한글박물관

또 다른 편지에서는 정조의 따듯한 마음 씀씀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요사이 몹시 더운데 기후 평안하신지 문안 알고자 합니다. 어머님 환갑생신을 하루 앞두고 있으니 제 심정을 경축하고 기쁘고 다행함을 어찌 적겠습니까? 날씨가 매우 덥사오니 들어와 기운을 잃으실듯하여 삼제(蔘劑, 인삼) 다섯첩을 보내오니 들어오시기전에 잡수시고 들어오셨으면 합니다. "(안국동에 즉시 바침)

이 편지를 받는사람은 정조의 큰 외숙모 곧 홍낙인의 처이다. 더운날 외숙모의 건강을 염려해 인삼으로 약제를 지어 챙겨보낸다는 내용 등으로 볼 때 정조의 가족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있다. 편지의 내용과 공손한 표현 속에는 단지 나이든 외숙모를 걱정하는 조카만 있을 뿐이다. 발신일이 따로 기록돼 있지 않지만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하루 앞두고 있다는 내용을 보아 1795년 6월 17일에 쓰여진 편지로 판단된다. 앞서 정조는 윤 2월에 8일간 일정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사도세자가 잠들어 있는 수원으로 행차해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환갑잔치를 성대하게 치렀다.

정조가 누이동생 청선공주에게 보내는 한글편지
정조가 누이동생 청선공주에게 보내는 한글편지

정조가 누이동생 청선공주(1756~1802)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여동생이 걱정 되지만 너무 살가운 것은 이상한 현실 속 오빠와 동생 사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편지의 내용은 "그사이 계속 잘 지내느냐? 본지 오래니 섭섭하다. 나는 더위 기운으로 인해 앓고 지낸다. 안부 알고자 잠깐 적는다"고 적어 간단하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 동생을 걱정하는 오빠의 마음은 충분히 확인 할 수 있다.

정조가 자신의 딸 숙선옹주에게 보낸 한글시첩
정조가 자신의 딸 숙선옹주에게 보낸 한글시첩

정조가 유빈박씨 사이에서 낳은 딸 숙선옹주(1793~1836)에게 내린 한글 어필 시첩에는 어린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다. 시첩은 시경, 국풍의 ‘빈풍 제 1편 칠월팔장’ 전문을 24면에 걸쳐 한글로 쓴 것으로 더위가 물러가고 추워지는 음력 7월의 풍속을 노래한 것이다. 절기에 맞춰 농사일을 준비하듯 윗사람과 아랫사람,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부인 등이 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정조는 딸에게 남길 당부사항을 타이르듯 전하고 있다. 어필의 필사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숙선옹주의 나이 8살 되는 해 정조는 승하했다. 이 때문일까 아직 10살도 되지 않은 어린 딸을 생각한 정조의 마음이 느껴져 더욱 절절함을 남는다.

안형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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