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역대 어느 국왕보다 학문을 사랑했던 정조. ‘독서대왕’ 또는 ‘공부의 신’이라 불릴 만큼 책사랑이 대단했던 정조는 특히, ‘훌륭한 문장력’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정조는 왜 그렇게 문장이라는 글쓰기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또, 그가 남긴 글과 글씨에는 어떤 방식으로 ‘애민사상’과 ‘개혁정신’이 담겨 있을까? 수원화성박물관(관장 한동민)이 정조대왕 탄신 270주년을 기념, 오는 29일까지 선보이는 특별전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회고록 '혜경궁읍혈록'에

"백일 되기 전부터 글자 좋아해

돌잔치 때 붓과 먹을 만졌다" 기록

"세손이 4~5세부터 글을 좋아하시니, 아침이 밝기도 전에 세수하고 수업에 게으르지 않으시더라. 그래서 내 비록 세손과 대궐을 달리하여 지내나, 아기네(세손) 글 멀리할까 염려는 아니하니라."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쓴 한글 필사본 회고록인 ‘혜경궁읍혈록(惠慶宮泣血錄)’에 수록된 내용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성장기와 궁중생활, 사도세자의 죽음과 친정에 관한 이야기가 주로 쓰였는데, 정조의 탄생과 성장기, 효심 등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특히, 정조가 어려서부터 열중한 독서와 학문에 대한 일화가 자세히 묘사돼 있다.

김문식 교수(단국대학교 사학과)는 "혜경궁이 남긴 기록을 보면 정조는 백일이 되기 전부터 글자를 좋아해 부친인 사도세자가 책을 만들어 줬는데, 놀때마다 그 책을 가지고 놀아 결국은 종이가 다 해지고 말았다"며 "돌잔치 때는 제일 먼저 붓과 먹을 만지고, 책을 펼쳐 읽는 시늉을 했고, 두 살때 이미 글자 모양을 잘 만들어 썼다. 대여섯 살 때 정조가 쓴 글씨를 가지고 병풍을 만든 사람까지 있었다"고 밝혔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쓴 한글 필사본, ‘혜경궁읍혈록’. 사진=수원화성박물관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쓴 한글 필사본, ‘혜경궁읍혈록’. 사진=수원화성박물관

표제 '정조어필' 살펴보면

"책 완독하면 母가 음식 줬다"

정조의 정겨운 친필기록 남아

이와 함께, 혜경궁 홍씨가 정조의 남다른 독서 수준을 매우 기뻐하며 응원하고 있었다는 걸 짐작케 하는 정조의 친필 기록도 재미있다. 표제 ‘정조어필’을 살펴보면 어머니와 아들의 정겨움이 물씬 풍기는 다음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옛날 내가 어렸을 때 책 한 질을 완독하고 나면 자궁(慈宮)께서 그때마다 약간의 음식을 마련해 주시어 기쁨을 표하셨으니, 세속에서 일컫는 ‘책씻이’라는 예가 바로 이것이다. 오늘에도 일이 있으면 반드시 말씀드리는 의리에 따라서 ‘춘추(春秋)’를 완독한 일을 자궁께 고하였더니, 자궁께서 소자를 마치 어렸을 때처럼 여기시고 마치 여염집에서와 같이 술과 떡을 약간 준비해 주시므로, 마침내 감인, 현독 등 여러 사람과 함께 이것을 먹었다."

정조가 책 한 질을 완독할 때마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음식을 마련해 주어 격려했다. 사진=수원화성박물관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 242년 간의 기록이 담긴 유교 경전 ‘춘추’는 오경(五經) 중 하나이자 최초의 편년체(編年體) 역사서로, 정조는 집무하는 틈틈이 이를 연구했다. 무엇보다 ‘춘추’에 명시된 천하를 하나의 통일된 질서 아래 편제한다는 ‘대일통(大一統)’을 강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간행을 통해 조선의 대명의리론을 알리고자 했다. 이는 왕권 강화에 심혈을 기울인 정조의 심정을 엿볼 수 있는 부분으로 꼽힌다.

이렇듯 정조는 조금이라도 여가가 생기면 한 질의 책 읽기를 연례적인 일로 삼았는데, 아마도 그 바탕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각별한 사랑과 지지가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책가도 병풍. 사진=이미지투데이
책가도 병풍. 사진=이미지투데이

어좌 뒤에 '책가도 병풍' 배치

"책에 빠질 시간 없을 때에는

이 그림 보며 즐거움 찾는다"

어좌 뒤에 왕권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도 대신 책가도 병풍을 배치하고 신하들에게 보이며 책사랑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소개한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선유가 말하기를, 비록 책을 읽을 수 없더라도 서재에 들어가 책상을 어루만지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하였다. 내가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혹 바쁜 업무로 인해 책에 빠져 지낼 시간이 없을 때에는 일찍이 그 말을 떠올려 이 그림을 보며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다. 이것이 현명하지 아니한가?" <일성록 中>

책가도 병풍은 서가(書架)와 같은 가구를 중심으로 책은 물론 각종 귀중품이나 문방구, 화훼 등을 그린 그림으로, 정조의 명령에 의해 처음으로 제작됐다. 이후 선비의 사랑방을 장식하는 상징적인 그림으로 인기가 높아지면서 수요가 확대됐고, 사대부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유행하기도 했다.

강소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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