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부부지간의 애틋한 정을 논하자면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와 함께 애절한 한글 편지를 남긴 경북 안동의 이응태(李應台, 1556~1586) 부부가 대표적이다. 이응태 부부의 사연은 병든 남편을 향한 아내의 간절한 마음이 감동적이다. 반면 성남의 강정일당(姜靜一堂, 1772~1832) 부부는 남편 윤광연(尹光演, 1778~1838)의 부인에 대한 존중이 오늘날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성남시 향토문화재 제1호 ‘정일당 강씨 묘’의 주인공 강정일당은 1832년 남편 윤광연보다 일찍 사망하여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75에 묻혔다. 묘는 훗날 남편 윤광연도 함께 묻힌 합장묘이다.

강정일당은 조선시대 여성 중 드물게 이름이 전해진다. 바로 ‘지덕(至德)’이다. 지덕이라는 이름이 전해지는 이유는 남편 윤광연 덕분이다. 강정일당 사후 윤광연이 간행한 문집 ‘정일당유고(靜一堂遺稿’에 그녀의 이름이 실려있다. 당시 문집 간행은 윤광연에게 전 재산이 소요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윤광연은 조선시대 흔치 않은 죽은 아내의 문집 간행을 단행했다.

강정일당의 남편 윤광연 한성부 준호구. 사진=성남시 소장
강정일당의 남편 윤광연 한성부 준호구. 사진=성남시 소장

지덕 20세, 광연 14세 때에 둘은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러나 광연의 집이 너무 가난하여 지덕은 결혼 후에도 3년을 친정에서 생활해야 했다. 시아버지의 상을 당하고도 상복 차림으로 생업을 위해 충청도와 경상도를 떠돌아야 했던 남편을 지켜본 지덕은 광연에게 글을 쓴다.

‘소첩이 재주와 덕이 없는 것이 부끄럽습니다만 어려서 바느질을 배웠으니 당신께서는 모름지기 참된 공부에만 힘쓰시고 먹고사는 데에는 관심을 두지 마소서.’

생계의 어려움으로 항심(恒心)을 갖지 못했던 광연은 아내의 이러한 마음에 감동하여 사서(四書)와 정주(程朱)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남편이 소리 내어 글을 읽으면 그 옆에서 바느질하던 지덕은 소리만 듣고도 글을 외워 암송했고 그 심오한 뜻마저 바로 이해하였다. 광연은 그 총명함에 깜짝 놀랐고, 부부는 함께 토론하고 공부하며 서로의 학문을 성장시켜 나갔다.

정일당유고. 사진=규장각 소장
정일당유고. 사진=규장각 소장

남편이 공부에 전념하도록 지덕은 열심히 뒷바라지했다 그러나 끼니를 거르는 것이 다반사였다. 궁핍한 생활 속에서 아이 10명을 낳았으나 모두 잃는 참상은 연속되었다.

이렇듯 어려운 형편에도 지덕은 길쌈으로 돈을 모아 남편의 조상들을 위해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의 선산을 마련하였다. 또한 「사기록(思嗜錄)」을 남겨 집안 어른들이 잘 드시던 음식 등을 기록해 두고 기일이 돌아오면 망자가 살아계실 때처럼 준비하였다.

지덕은 남편을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하찮은 술에 변변찮은 안주라도 정갈하게 차려내었다. 그 술상을 위해 지덕은 머리카락을 잘라 팔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덕의 몸이 편치 않음을 눈치챈 광연은 찾아온 손님을 돌려보낸 일이 있었다. 지덕은 그런 남편에게 괜한 일을 했다고 쪽지를 써 사랑방으로 건넨다. 또 처남이 찾아오자 광연은 기쁜 마음으로 지덕에게 쌀밥을 지어 먹자고 한다. 지덕은 시댁 식구보다 친정 식구에게 더 후의를 베푸는 것 같다며 사양한다. 광연은 종종 장인 장모가 좋아하는 마른고기를 챙겨 처가로 보내게 하였는데 강정일당의 헌신에 대한 남편의 고마운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정일당 강씨 묘. 사진=성남시 향토문화재 제1호
정일당 강씨 묘. 사진=성남시 향토문화재 제1호

 

강정일당은 당시 소홀한 여성 교육 실태와 남녀 차별, 여성으로서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지 여부 등 쉽지 않은 대화를 남편과 나누기도 하였다. 강정일당이 삯바느질 등으로 윤광연의 공부를 위해 헌신했다면 남편 윤광연은 아내의 허심탄회한 대화 상대가 되어주고, 아내가 필요한 책을 빌려다 주고, 자신을 대신하여 글을 짓게 하는 등 아내를 존중하였다. 그의 지지와 존중은 『정일당유고』 간행으로 이어져 강정일당을 후세가 기리는 역사적인 여성으로 남게 하였다.

윤광연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강지덕을 그리워하며 ‘하늘이 나의 어진 벗을 빼앗아 갔으니 이후로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라며 깊은 슬픔을 드러내었다. 아내를 일컬어 ‘어진 벗’이란 표현에서 다시금 윤광연의 지극한 존중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남편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강정일당, 그리고 남존여비의 조선시대 사회 풍조 속에서 한없이 아내를 존중한 윤광연, 두 사람 중 누가 더 사랑한 것일까?

성남시 박물관사업소 학예연구사 정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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