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2일 민주당 서울 서대문갑 당선인 김동아는 "4·10 총선 전날 이재명 대표를 굳이 재판에 불러 세워 놓은 것이 이번 총선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라며 "사법부 개혁을 넘어 민주적인 통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재판부가 ‘(이 대표가) 불출석할 경우 구인장 발부’를 언급한 데 대해서도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이런 경우는 없다. 브라질에서 룰라를 구속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겠는가"라고 주장했다.

4월 29일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단독으로 출마한 박찬대는 "국회 법사위와 운영위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것을 아예 못을 박겠다"며 "(4·10 총선에서 민주당은) 단순 다수가 아니라 제1야당이 단독으로 과반을 한 첫 사례다. 그래야 우리가 책임 있게 국회를 운영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이 든다"고 했다.

5월 1일 민주당 전남 해남-완도-진도 당선인 박지원은 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 ‘채 상병 특검법’ 등 쟁점 법안을 상정할 것을 촉구하며 ‘여야 합의’ 원칙을 내세운 자당 출신 국회의장 김진표를 향해 "아주 개OO"라며 "(김 의장의) 복당을 안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5월 13일 민주당 당선인으로 국회의장 후보였던 추미애는 이재명이 자신에게 "이번만큼 국민적 관심과 기대가 있는 의장 선거가 있겠느냐.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갔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공연히 과열되다 보니 우려가 많은 것 같다. 잘 좀 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추미애는 "(이 대표가) 다른 후보에게는 그렇게 안 했다고 한다"며, 이재명이 자신에게 힘을 실어줬다는 걸 내비쳤다.

이에 질세라 추미애의 경쟁자인 우원식은 5월 15일 "이재명 대표가 ‘국회는 단호하게도 싸워야 하지만 한편으로 안정감 있게 성과를 내야 된다는 점에서 우원식 형님이 딱 적격이죠’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발언들의 공통점은 과격하거나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지난해 9월 27일 새벽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유창훈이 이재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을 때 내세운 사유 중 하나는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었다. 법적 방어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이재명의 호소를 받아들인 것이다. 정치적 방어를 하라는 게 아니었다. 법적 방어에 충실하라는 요구가 왜 ‘국민에 대한 도전’이란 말인가?

미국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국내에서도 큰 호응을 얻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서 제시한 독재 판별의 두 기준 중 하나는 ‘제도적 자제’다. 이들은 ‘제도적 자제’를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로 정의하면서 "자제 규범이 강한 힘을 발휘하는 나라에서 정치인들은 제도적 특권을 최대한 활용하려 들지 않는다. 비록 그게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해도 기존 체제를 위태롭게 만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거대 야당의 국회 법사위·운영위 독식은 이 ‘제도적 자제’를 위반한 것으로 입법독재의 소지가 다분하다.

박지원은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논란이 일자 "방송 시작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적절치 못한 내용을 얘기했다"며 "이유를 막론하고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당사자와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밝혔다. 사과를 한 건 좋지만, 방송 시작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건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만 지적해두자.

추미애·우원식의 발언은 딱하다. 또 출마했다가 중도 사퇴한 후보들은 뭔가. 오죽하면 민주당에서조차 "국회의장 경선이 아니라, 누가 더 친명인지를 가리는 ‘친명 오디션’ 같다"거나 "5선, 6선쯤 되는 중진 의원들이 중간에 드롭(불출마)하는 모양을 보면서 자괴감 같은 게 들었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비판을 하려고 이 글을 쓰게 된 건 아니다. 위 발언들은 모두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이게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이자 본론이다. 모두 다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유튜브 방송에 나와서 한 말이다.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왜 민주당 정치인들은 김어준 앞에만 서면 작아지면서 그와 그를 따르는 강성 지지자들의 눈에 들기 위해 과격해지려고 애를 쓰는가?

지금 우리는 정치 유튜브의 전성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뉴스리포트 2023′에 따르면 한국인의 53%가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봤는데, 함께 조사한 미국 등 46국 평균(30%)과 비교하면 두 배에 가까웠다. 147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김어준과 같은 유력 정치 유튜버는 총선 기간 대목을 맞은 셈이었는데, 김어준이 "민주당의 온라인 공천심사위원장"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과거엔 "멀쩡한 사람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모두 개가 된다"는 ‘예비군복 효과’라는 게 있었다지만,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는 건 유튜브 앞에만 서면 과격한 발언을 일삼게 되는 ‘유튜브 효과’다. 정치인들의 유튜브 발언은 다시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때문에 그걸 염두에 둔 정치인들은 유튜브에선 구독자의 입맛에 맞는 자극적인 발언을 하려고 애를 쓰게 된다.

이것도 문제이지만, 이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른바 ‘안면몰수’와 ‘내로남불’로 대중의 분노를 유발하는 권력자들의 행태다. 이게 정치 유튜브가 심혈을 기울이는 ‘증오·혐오 마케팅’의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진영으로 갈라진 대중은 자기편의 문제엔 눈을 감고 반대편의 문제에만 눈을 부릅뜨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선거에서 사실상의 심판 역할을 맡는 중도파가 있기 때문에 분노 유발 행위에 대한 평가가 불공정한 것만은 아니다.

대중은 정치인에 대해 절대평가를 하지 않는다. "누가 더 나쁜가"를 따지는 상대평가만 한다. 그 ’나쁨’의 정도를 재는 기준은 꼭 법이나 도덕은 아니다. 대중은 분노를 유발하는 감정적 측면을 중시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밉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원외 인사가 총선 백서 회의에서 "국민의힘의 대국민적 밉상 이미지를 걷어내야 한다"고 했다지만, 총선 패배 원인은 국민의힘이라기보다는 대통령 윤석열의 ‘밉상 이미지’였다. 언론에 보도된, 민주당을 선택한 중도 유권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자면 그렇다. 윤석열이 특히 김건희 문제에서 드러낸 안면몰수·내로남불과 결별해야 거세게 부는 정치 유튜브 바람도 잦아들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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