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토사구팽의 팽

한자 팽(烹)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팽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의 팽이다. 토사구팽은 사기 월왕구천세가에 처음 소개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월왕 구천은 월나라가 패권을 차지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범려와 문종을 각각 상장군과 승상이라는 직책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범려는 월왕에 대한 믿음을 잃어 제나라로 탈출하여 은거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월왕의 밑에 남아 있는 문종을 걱정하여 "새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며,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월왕에게서 피하라고 충고한다. 문종은 이 편지를 받고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여 주저하다가 결국 월왕이 내린 칼로 자결하여 세상을 마감하게 된다. 이 말은 열전의 한신 편에서 유명세를 얻게 되는데, 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한신도 종리매의 자결과 함께 유방에게 팽을 당하면서 다음과 같이 탄식한다.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도다. 교활한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고,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며, 적국이 타파되면 모신도 망한다. 천하가 평정되고 나니 나도 마땅히 팽 당하는구나. (果若人言 狡鬼死良狗烹 飛鳥盡良弓藏 敵國破謀臣亡 天下已定 我固當烹)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후보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적지 않은 제1 야당의 후보자가 그 선거구의 제21대 현역 국회의원을 꺾고 후보자가 된 것을 본다. 정당들은, 특히 제1 야당은 국민 눈높이에 맞춰 ‘시스템에 의해, 시스템 공천’을 한 것으로 당연한 결과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현역의원들이 "나는 팽 당했다"고 말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후보로서의 자질, 당에 대한 기여도 등에서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어보임에도 불구하고 후보가 되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때의 팽은 분명 교토사양구팽(狡兎死良狗烹)이라는 말에서 따온 의미일터. 당이 아무리 시스템 공천에 의한 결과임을 주장해도 팽 당했다고 말하는 이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2. 약팽소선의 팽

또 다른 의미의 팽은 약팽소선의 팽이다. 약팽소선은 노자 도덕경(老子 道德經) 60장에 나온다. 원전은 ‘치대국 약팽소선(治大國 若烹小鮮)’이며, 정치를 함에 있어서 자연에 따라 행하고 인위를 가하지 않는 ‘무위(無爲)’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노자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살이 연해 부서지기 쉬운 작은 생선을 삶는 것처럼 정치도 차분하게 기다리며 세심하게 살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작은 생선을 몸소 구워 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구울 때 자주 뒤집으면 살은 흩어져 모양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구워지지도 않는다. 이렇듯 나라를 다스리는 일 또한 정치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아침저녁으로 이런저런 규제를 만들어 사사건건 간섭하고 통제하면 시민이 자유롭게 창의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선거 때면 의당 그러러니 하지만 유독 이번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각 당이 내놓는 공약을 보고 있노라면 나라를 작은 생선 굽듯이 하라는 노자의 말씀은 설 땅이 없어 보인다. 특히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내놓는 수 많은 계획, 공약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부가 나서서 전 국토를 파헤쳐 길을 내고,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은 모조리 집을 짓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공부시키는 일까지 또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일까지 정부가 모조리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와 같은 정책공약이 타당성이 있기는 한가. 설령 타당성이 있다 한들 정부가 국민의 삶에 이렇게 끼어들어 규제하고 간섭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인가. 대저 국민의 삶이라는 것이 작은 생선과 다름 아니거늘.

3. 팽 그리고 팽

치대국 약팽소선의 팽으로 본 정치가 그리운 것은 나만의 바람일까. 4월 10일 새롭게 뽑힐 제22대 국회의원은 팽을 걱정하지 않고 팽하는 정치를 할 정치가들이기를 빌면서, 다시 한번 한자 팽(烹)의 의미를 새겨 본다.

이계안 2.1지속가능재단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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