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살리자>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제헌헌법에 근거하여 지방자치법이 1949년 7월 4일 제정되며 처음 시행되었으나 1961년 5·16군사 쿠데타로 중단되었다. 이후 만 30년이 지난 1991년 지방의회의 부활, 1995년 자치단체장의 직접 선출 재개로 비로소 지방자치가 제모습으로 부활하였다. 그 이후 약 30년이 지난 현재에도 자치분권 수준은 아직 부족하고 그 진행속도 또한 너무 느려 답답한 상황이다.

지방자치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지역주민이 ‘지역살림의 결정권’을 획득했다는 ‘민주주의의 지역화’이다. 그러나 그동안 지방자치를 단지 지역개발과 발전을 위한 대리집행자 선출이라는 ‘성장주의의 공간적 확산’으로 오해한 측면이 강했다. 그 결과, 선거로 대리집행자를 선출하는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system)가 지방자치 정치시스템의 전부라는 한정된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인식은 정치인들이 모든 결정권을 독점하는 지배계급으로 군림하며 그들만의 리그로 운영하는 현재와 같은 집권적 정치체제의 고착화라는 악순환을 불러왔다.

이로 인해 지방자치가 중앙정부로부터 계획 권한과 재원 배분을 둘러싼 자치분권 투쟁이라는 잘못된 정치문화가 만들어졌다. 특히 지방정부의 SOC공약 이행 요구에 경제성 논리를 내세우며 발을 빼려는 중앙정부의 일관된 태도는 정치권의 선심성 정치가 악용되는 상황을 만들어 왔다. 이는 "돼지 여물통 정치"(pork barrel politics) 또는 "곳간 열쇠를 움켜쥔 못된 시어머니 정치"로 빗대어지는 중앙의존 체질을 만성화시켜, 중앙에 대한 관·관 접대와 중앙정치에 대한 로비의 일상화 등이 만연하게 된 원인이다. 이런 정치적 상황은 지역주민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치적 삶에 대한 결정권을 오직 청원과 민원 등과 같은 항의로만 행사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지체현상에 빠지게 만든 셈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부처별로 산재한 인구 정책을 하나로 통합하는 부처 설치가 논의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인구부’, 더불어민주당은 ‘인구위기 대응부’ 설립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인구정책으로만 인구 감소와 초저출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지역 소멸을 초래하는 수도권 초과밀화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소하는 등 지역균형발전과 연계하는 종합적인 대책을 모색하는 컨트롤타워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지역사회를 책임지는 시도지사협의회는 인구감소와 함께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할 전담 부처인 가칭 ‘인구지역균형발전부’ 신설을 공론화하고, 지방분권전국회의 등 시민사회단체도 총선 공약화하기 위한 공동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번 4월 실시될 총선에서 여야 정치권이 부총리급의 ‘인구지역균형발전부’ 신설을 핵심 공약으로 채택하고, 22대 국회 출범 직후 제1호 법안으로 처리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사전 조치로 정부가 부처 신설을 위한 업무, 기능 조정 등 법안 초안 마련 작업에 즉각 돌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우리의 행정·문화적 특성에 비추어볼 때 대통령실 내에 분권과 균형발전 및 자치정책을 일상적으로 점검하고 집행을 조율하며 정치권과 소통하는 가칭 ‘지방시대기획관’이나 ‘분권균형발전기획관’ 등과 같은 전담 참모조직의 설치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역대 정부에서도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위원회를 대통령 소속으로 설치하였으나 자문기능에 치우쳐 강력한 집행력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회의에 직접 참석하여 업무를 챙기지 않아 추진과 실행력이 부족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정책을 통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지방시대위원회를 출범시켰으나, 여전히 과거와 같은 대통령 자문기구에 머물고 있어 실질적인 집행력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에 분권과 자치를 요구하는 시민사회 단체가 이와 같은 요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소멸에 대응하는 강력한 국가적 정책의지와 정치권의 통합적인 관심과 추진의지를 기대해 본다.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이다.

송창석 사)자치분권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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