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나의 인생이다. 어려서부터 축구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신학교(가톨릭 사제가 되기 위해 수업을 받는 학교)에 들어가면서, 신부되는 데 축구가 매우 중요한 운동이란 걸 알게 되었다. 축구는 체력 단련에도 좋지만 공동체 정신 함양에도 매우 중요했다.

유학시절 필자에게 축구는 큰 안식처였다. 타지에서 힘든 시절을 보낼 당시, ‘파리화랑’이라는 한인 축구회를 알게 되었고, 매주 토요일마다 축구를 하며 스트레스도 풀고 교민뿐 아니라 외국 사람들과 축구로 우애도 다졌다. 파리 한인 축구대회에서 성당 대표로 나가 두 차례 우승도 했다.

필자의 축구 사랑은 유학 후 한국에 들어와서도 이어졌다. 신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하면서 학생들과 매주 축구를 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이제 움직이는 공보다 서 있는 공을 칠 나이라고 주위에서는 말들 하지만, 여전히 축구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한국인이면 갖는 축구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번 아시안컵 이후 한국축구에 대해 말들이 많다. 필자도 큰 기대를 갖고 이번 대회를 시청했기에, 실망감도 매우 컸다. 사실 국가대항 토너먼트의 특성상 4강 정도면 아주 낙심할 결과는 아니다. 그러나 탈락하는 과정이 너무 좋지 않았다. 4강전 패배를 보며 필자에게 가장 가슴이 아팠던 부분은 선수들의 축구하는 자세였다. 두 차례 연장전으로 인해 피로가 쌓이기도 했지만, 너무나 조심스럽게 소극적으로 축구를 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상대편 선수들은 마음껏 자기 기량을 뽐내며 신이 나서 축구를 했고 결국 우승후보인 우리나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는데, 왜 우리 선수들은 신나고 자신감 있게 경기를 하지 못했을까? 국민의 너무 큰 기대로 인한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을 신나게 놀게 하기보다, 모든 분야에서 1등이 되도록 하는 교육 풍토 때문은 아닐지. 성적만을 우선시하는 축구계의 그릇된 풍토 때문은 아닐지.

그와 함께 한국의 축구 행정에 대한 비판도 필요해 보인다. 국민의 정서나 비판을 외면하고 아시안컵이 끝나자마자 미국으로 건너간 감독도 문제지만, 이에 대처하는 축구협회의 대응도 매우 아쉽다. 협회의 행정은 왜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하고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일까.

프랑스에서 유학하면서 놀랐던 것은 프랑스인의 일하는 모습이었다. 일로만 따지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훨씬 더 열심히, 더 많이 그리고 더 효율적으로 하는데, 왜 우리나라는 프랑스 사람들보다 못 살고, 저들은 저렇게 여유 있게 일하는데도 선진국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긴 역사 안에서 지혜와 경험으로 구축된 행정 시스템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국가의 체계나 행정, 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으면, 국민이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가를 즐기면서 일해도 충분히 먹고살 만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혹은 중간에 누군가가 부당하게 국민의 일로 얻은 이익을 독차지한다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얻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축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무리 좋은 선수들을 모아놓아도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시스템이나 조직, 행정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음을 이번 아시안컵이 보여주었다. 이는 감독 한 명만의 문제가 아니라, 축구협회의 행정, 나아가 나라 전체 축구계의 풍토, 문화, 시스템, 운영 방식, 행정과 상관한다. 조직이나 행정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의사소통과 그에 따른 결정과 책임의식이다. 건강하고 유연한 체계와 행정 그리고 문화와 풍토가 갖춰져 있지 않을 때는, 아무리 손흥민이나 김민재와 같은 선수가 나온다 해도 팀으로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 어렵다.

성적만이 우선시되고 최고만 인정받는 사회에서는 진정한 발전이 있을 수 없다. 감독이 바뀔 때마다 매번 새롭게 시작한다면, 우리의 훌륭한 선수들은 새로운 감독과 전술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이 청년들이 축구를 정말로 신나고 자신 있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아직까지 선수들이 죽어라 고생했다면,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

한민택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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