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다 보니 주변에서 올해 경기 전망에 대해 많이들 물어본다. 설명을 위해 ‘경기도 경기’라는 말을 반복하다 보면 가끔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다. 다른 지역들은 ‘제주 경기’, ‘전남 경기’처럼 편하게 쓸 수 있는데 경기도는 그럴 수 없으니 한국은행 경기본부에 근무하면서 생긴 사소한 불편사항 중 하나다. 자주 사용하다 보면 평소에는 별 생각이 없던 두 단어의 정확한 의미가 궁금해진다. 한글 표기로는 똑같으니 뜻이나 유래를 알기 위해서 한자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경기도 경기’에서 앞 쪽의 ‘경기(京畿)’는 수도를 둘러싼 주변 지역을 말한다. 당나라 시대에 왕성의 주변지역을 경현과 기현으로 나누어 통치했던 데서 기원했다고 하는데 ‘경’은 왕성이 위치한 지역을, ‘기’는 왕성을 중심으로 사방 500리(200km) 이내의 땅을 의미한다. 그러다가 점차 ‘경기’라는 한단어로 사용되면서 ‘왕도의 외곽지역’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처음 도입되어 개성을 중심으로 경기좌도와 경기우도로 나누어 관할하였는데, 조선시대에 왕도가 한양으로 옮기면서 경기좌도는 황해도가 되고 수원, 광주, 여주 등이 새로이 경기도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뒤 쪽의 ‘경기(景氣)’는 총체적인 경제활동의 기운이라는 의미이다. 뜻으로만 보자면 경제의 경(經)자와 기운의 기(氣)자를 써서 경기(經氣)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 햇볕 경(景)자를 쓴다. 왜 그런지 찾아보았지만 유래를 확인할 수 없다. 아마도 ‘이코노미’를 뜻하는 근대적인 의미의 ‘경제(經濟)’라는 단어가 우리 언어생활에 정착되기 전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추측해 본다. 하지만 본 뜻도 우리가 사용하는 문맥에서 크게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햇볕이 (국민들의 경제활동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는 정도’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경기가 과열되었다거나 식었다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리고 변화의 흐름을 나타내는 어감도 있어서 호황, 불황과 같은 경기 변동을 설명하는 데도 어울리는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새해 경기도 경기 전망을 살펴보자. 경기도 경기는 글로벌 경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경기도 경제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자동차 부문이 글로벌 경기 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부진하면서 경기도 경제도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2000년대 이후 여타 지역보다 높은 성장세를 구가해 왔던 경기도지만 지난해의 경우 수출 부진으로 다른 지역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다.

올해 세계 경제는 미 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긴축 여파로 성장세가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몇 년간 매우 높은 수준을 보였던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여전히 중동과 동유럽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남아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홍해 물류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점은 걱정이다. 또한 금년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EU 등 주요국에서 많은 선거가 있을 예정인데 그 결과에 따라 국제 정세가 급변할 가능성도 있다. 한마디로 외부여건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나쁜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년 말부터 그간 어려움을 겪었던 반도체 업황이 점차 되살아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과거 경험에 비추어볼 때 반도체 사이클이 통상 2년 이상 지속되었기 때문에 수출 중심의 경기 회복세가 이어진다면 올해와 내년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2%대 초반 수준의 개선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그 개선 추세는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주요국의 경기둔화가 점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완만하게나마 나아진다면 다른 나라에 비해 선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IT 부문을 제외하고 본다면 국민들이 경기회복의 온기를 충분히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특히 높아진 물가수준과 고금리 장기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취약계층의 어려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올 한 해 경기도에서 시작된 경기회복의 따뜻한 기운이 전국으로 퍼져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안성근 한국은행 경기본부 기획조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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