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부천 석왕사

석왕사 전경.
석왕사 전경.

봄은 연둣빛이다. 봄 나무들은 다투지 않고 서로 어울려 다채로운 연둣빛을 빚어낸다. 그래서인지 연둣빛은 따뜻하다. 봄의 연둣빛처럼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세상 속으로 들어간 사찰이 부천 원미동에 자리 잡은 석왕사다.

석왕사 일주문.
석왕사 일주문.

북한의 유명한 사찰 이름 빌려온 '석왕사' 

천막법당서 1976년 원미동 마을에 자리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숨쉬려는 의지 

석왕사 뒤로는 원미산이 편안하게 누워있고 앞으로는 주택들이 빽빽하게 늘어섰다. 깊은 산속의 사찰과 풍경부터 다르다. 일주문 바깥부터 경내가 훤히 보인다. 시작하자마자 절정을 마주친 느낌이랄까. 학교 운동장 같은 넓은 마당이 펼쳐졌고 그 둘레를 따라 건물이 이어졌다. 흔히 만나는 사찰의 건물 배치와 확연하게 달라 처음에는 낯설게 다가온다. 특히 넓은 마당이 그렇다. 이렇게 넓은 마당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석왕사의 역사를 살펴봐야 풀릴 것 같다. 석왕사의 역사는 현대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76년 천막법당이 이 자리에 문을 열었고 사찰 이름은 북한의 유명한 사찰인 석왕사에서 빌려 왔다. 사찰을 경치 좋은 산속이 아니라 도시에 만든 건 사람들이 바로 곁에 있기 때문이었다. 중생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중생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때부터 석왕사는 부천의 역사와 불교계의 역사에서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도움이 필요한 노동자들의 피난처이자 대변자가 되었고 민주화운동이 치열했을 때는 앞서서 나아갔다. 사찰과 잇닿은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숨쉬려는 의지의 결과였다. 민주주의가 이뤄진 후에는 일상생활 속 복지와 외국인 노동자 문제로 관심이 확장되었다. 오랫동안 이 마당에서는 사람들을 보듬어주는 축제와 행사가 열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이곳에 쌓였을까.

육화전 내부.
육화전 내부.

한때 민주화운동·노동자들의 피난처역할 

이후 생활 복지·외국인노동자 관심 확장

마당뿐만 아니다. 사찰 곳곳에서 석왕사의 특별한 역사를 보여주는 곳을 만난다. 육화전 안에는 귀국하는 미얀마 노동자들이 기증한 불상이 봉안되었다. 명부전 위층에 자리 잡은 천상법당에서는 전시회가 열리기도 한다. 사찰 아래쪽 구역에는 생활협동조합 매장과 수영장까지 마련되었다. 범종각을 따라 언덕을 내려가면 룸비니유치원에 이른다. 대부분 다른 사찰에서는 접하기 쉽지 않은 시설이다. 이곳을 따라 걷다보면 그동안 석왕사가 어떤 길을 걸왔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석왕사가 표방한 ‘바른 불교 실천 불교’는 순간순간 현실이 되고 있었다.

석왕사의 핵심 건물은 육화전이다. 대개 사찰의 핵심 건물이 대웅전, 극락전, 대적광전인 점과 사뭇 다르다. 널리 알려진 이름 대신 육화전이란 이름을 붙인 데에는 특별한 뜻이 있다. 육화는 몸, 입, 뜻, 계율, 견해, 이익이 화합하는 방법을 뜻한다. 육화를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아예 건물 전면을 여섯 칸으로 만들었다. 화합이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공감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석왕사의 역사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육화전 실내는 광활할 정도로 넓다. 중앙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봉안되었다. 실내에는 이국적인 불상도 보이는데, 미얀마 노동자들과 스리랑카 대통령이 기증한 불상들이다.

미얀마 노동자들이 기증한 불상.
미얀마 노동자들이 기증한 불상.

육화전 옆으로 명부전이 이어졌다. 명부전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우뚝 솟은 팔각구층석탑을 만난다. 탑 둘레를 따라 늘어선 열두띠 동물들을 찬찬히 살펴본 후 다시 계단을 오르면 다른 사찰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불상들을 마주한다. 비록 역사가 오랜 불상들은 아니지만 부처의 일생을 떠올리며 차례차례 살피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가장 먼저 만나는 불상이 초전법륜상이다.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설법하는 장면을 표현하였다. 오래 전 석가모니가 낸 위대한 오솔길은 더할 수 없이 큰 길이 되었으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 위를 걷고 있다. 그 옆으로 거대한 불상이 편안하게 누웠다. 45년간 쉴 새 없이 깨달음의 길을 전하던 석가모니는 큰 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들었다. 석가모니의 육신은 사리가 되어 탑으로 들어갔고 말씀은 제자에서 제자로 이어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열반상 아래에는 정성을 들여 가꾼 꽃들이 부처에게 받치는 공양물처럼 때가 되면 활짝 핀다.

초전법륜상.
초전법륜상.

초전법륜상 바로 옆은 천상법당이다. 하늘 위 세상의 법당이라는 말처럼 법당 안은 환하고 따뜻한 빛이 가득하다. 법당 뒤쪽에는 커다란 불상들이 열 지어 중생들을 굽어보고 있다. 이 불상들은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불로 오랜 동안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불자들은 법당 안에서 그들의 간절한 바람이 부처에게 가닿기를 기원하며 오늘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가며 경전을 읽는다.

이제 석왕사에서 발걸음을 옮길 차례다. 석왕사가 자리 잡은 원미동은 조용한 주택가다. 원미산 자락을 따라 높지 않은 집들이 열 지어 늘어섰다. 큰 길이 동맥처럼 이어졌고 그 사이사이로 난 골목이 모세혈관처럼 뻗어나갔다. 사람들은 길 사이로 오가고 때로는 잠시 멈춰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아파트가 도시를 뒤덮은 현실에서 잠시 다른 세상으로 온 착각마저 든다. 때문에 발걸음은 석왕사에서 마을로 이어진다. 더구나 이곳은 베스트셀러 <원미동 사람들>의 무대가 아닌가.

열반상.
열반상.

확트인 일주문과 학교 운동장같은 마당 

일반적 사찰과 달리 핵심 건물인 육화전 

몸·입·뜻·계율·견해·이익의 화합 뜻 담겨 

원미동을 제대로 맛보려면 걸어 다니는 것이 좋다. 먼저 ‘원미동 사람들’의 무대이자 양귀자 작가가 살았던 무궁화연립을 찾아간다. 석왕사에서 그곳으로 가다 보면 작은 길과 골목을 자주 만난다. 잠시 원미동 사람이 되어 이십 여분을 걷다보면 무궁화연립이 있던 자리가 나온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궁화연립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대화파크아파트가 들어섰다. 아파트 입구에는 무궁화연립이 있던 자리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작가는 이곳에서 살며 평범한 사람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눈여겨보았다.

대화파크아파트 다음 행선지는 걸어서 5분 거리인 옛 원미구청인 원미어울마당이다. 이 앞에는 ‘원미동 사람들’ 관련 조형물이 설치되었다. 소설 속 원미동 시인인 몽달씨가 책을 읽고 농사 짓는 강노인은 삽을 들었으며 형제슈퍼를 운영하는 김반장은 라면을 나르고 있다. 이들은 소설에만 등장하는 인물들이 아니라 지금 우리 주위에서 만날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 주위는 ‘원미동 사람들’에서 나온 글로 빙 둘렀고 이 글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제 그 희망을 갖기 위해 서울에서 떠나게 되었다."

원미어울마당에 있는 ‘원미동사람들’ 관련 조형물
원미어울마당에 있는 ‘원미동사람들’ 관련 조형물

석왕사 앞쪽이 ‘원미동 사람들’을 따라 마을 한 바퀴 도는 길이라면 석왕사 뒤쪽은 원미산을 따라 산책하는 길이다. 원미산은 낮은데다 산세가 험하지 않고 산책로가 잘 갖춰져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이왕이면 석왕사 근처에 있는 원미공원 문학동산으로 오르면 좋다. 원미공원 문학동산으로 가는 길에는 도로 아래 놓인 지하통로가 있다. 이곳은 원미동의 역사와 ‘원미동 사람들’을 간단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꾸몄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어느새 원미산 정상에 자리 잡은 원미정이 나온다. 원미정에 오르면 시원하게 펼쳐진 부천 일대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원미정에서 바라본 부천 풍경
원미정에서 바라본 부천 풍경

육화전 내 미얀마 노동자 기증 불상 눈길 

석가모니 초전법륜상·옆으로 누운 열반상 

생활협동매장·수영장까지 마련 풍경 독특

원미정 다음 코스는 진달래동산이다. 봄이면 진달래가 커다란 동산 곳곳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인다. 이때가 되면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마침 진달래축제도 열린다. 사람들은 진달래를 감상하며, 사진을 찍으며, 진달래 길을 걸으며 진달래가 전해주는 신선한 봄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탄성을 지르며 가다보면 진달래동산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에 이른다. 앞에서는 진달래가 마음을 톡톡 건드리고 멀리서는 아스라한 풍경이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진달래와 풍경에 취하는 사이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이 활짝 기지개를 켠다.

진달래동산 풍경
진달래동산 풍경

발걸음은 부천활박물관으로 이어진다. 박물관은 진달래동산 입구에 자리 잡았다. 부천과 활박물관은 어떤 인연이 있는 걸까? 부천에 살던 궁시장의 아들이 부천시에 아버지의 유품을 기증하였고 부천시는 이를 기반으로 박물관을 만들었다. 박물관은 크지 않지만 전통 활의 이모저모를 꼼꼼하게 전시했다. 특히 각 시대별 활과 화살을 전시한 곳은 눈여겨 볼만 하다. 화살도 한두 가지가 아니고 또 나라마다 다르다는 걸 알면 깜짝 놀란다. 오랫동안 이 화살이 사람들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안전하게 지켜왔다.

부천활박물관 전시
부천활박물관 전시

석왕사는 허브다. 석왕사에서 뻗어나간 길을 따라 걸을 때 사찰의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이 길은 가슴 몽글몽글한 여행길이자 역사를 따라가는 답삿길이며 그 뜻을 되새기는 순례길이다. 봄날 마음의 기지개를 켜고 싶다면 바로 지금 "멀고 아름다운 동네"로 떠나는 건 어떨까.

글·사진=박찬희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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