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지구를 굴리며
김종경/도서출판 별꽃/127쪽/1만2천 원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매일 같이 똑같던 일상에 변화가 찾아왔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새롭게 느껴졌고, 주위 풍경은 그토록 아름다울 수 없었다. 이는 곧 행복감으로 이어졌고, 지겹기만 했던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김종경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저물어 가는 지구를 돌리며’를 훑어 보는 동안 최근 어느 작가에게서 들은 이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마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한, 그러한 연유는 정재훈 문학평론가의 해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하루하루의 일상이 중첩되는 와중에도 그 안에서 희미하게 빛났을 시적인 힘이야말로 분명 누군가에겐 따뜻하고 소중한 양식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김종경이 만들어놓은 시적인 세계가 특별한 이유는, 이렇듯 우리가 보지 못했던(아니면, 보고도 외면했었을) 변방에 있는 이웃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시집은 현실 세계의 부조리한 현상을 다루면서 내면의 울림을 자아내는 ‘서정적 리얼리즘’의 정수로 평가 받고 있다. 그 안에서 작가는 현대인의 유목성이나 생태 위기, 사회 부조리, 소외 계층 등 암울한 변방 세계를 통해 우리 시대가 처한 아픈 자화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생(生)과 사(死)를 비롯한 위태로운 모습들은 작가 특유의 위트와 반전으로 역설, 희망을 노래한다. 현대인이 처한 ‘변방’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인간성 회복에 주목하고 있는 까닭이다.

‘소나무 위에서 / 독수리가 스스로 목을 맸다… 잠든 독수리의 / 까만 눈망울 속엔 아직도 / 광활한 우주의 풍경이 / 펼쳐질 터이고… 지금도 지구를 떠도는 / 수억의 유목민과 전쟁 난민들이 / 새만도 못한 종족 공동체로 /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는 /이 불편한 진실 앞에서 나는 / 독수리의 온전한 귀향과 / 명복을 기원하는 바이다’ <‘떠도는 새’ 中>

특히, 생태 위기에 대한 상념이 깊은 김 시인은 카메라 렌즈 속에 포착되는 생명체를 슬프고 아름답게 펼쳐 보이는 독보적인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자연의 제왕이 돼 버린 인간 탐욕의 가혹한 진실과 물질문명의 적나라한 파괴성, 그리고 자연 본질에 대한 순간 포착 이면의 부조리함을 생명 회복에 대한 염원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산과 들이 붉은 속살을 드러내며 숲속 오솔길이 사라지자 소리보다 빠른 자동차 길들이 또 다른 세상의 문으로 이어졌다. 그것이 삶과 죽음의 경계일 줄이야. 길 잃은 고라니와 짐승들이 차례차례 불빛 속으로 뛰어들던 밤, 나도 아득한 절벽 아래로 한없이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혼돈의 밤 - 천만 마리를 위한 진혼곡’ 中>

그런 김종경 시인에게 소설가이자 동화작가인 이상권 작가는 "그의 시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잉태한 생명의 근원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평단에선 "시적으로 마련된 상상의 무대 뒤편에 불온한 핏빛이 서려 있듯이 안개를 비명과 어둠, 고양이와 같은 영묘한 이미지들과 뒤섞어 혼돈의 맥락을 구축했다"는 평가다.

용인에서 태어나 동국대(언론학석사)와 단국대(문학박사) 대학원을 졸업한 김 시인은 지난 2008년 계간 ‘불교문예’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저서로는 시집 ‘기우뚱, 날다’와 포토에세이 ‘독수리의 꿈’ 등이 있다.

강소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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