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지우고 님이되어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도로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이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 인생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프랑스의 철학자 샤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면, 리투아니아 출신의 레비나스는 타인에게서 인간다운 삶의 길을 발견하였다. 둘 중 누구 말이 옳을까? 아마도 한국과 같이 타인의 시선에 좌지우지되는 나라에서는 샤르트르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까? 태어나기 전부터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한국인에게 타인은 넘어서야 할 경쟁 상대자로 각인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프랑스에서 유학할 때 한국 교포들을 만날 경우가 있었는데, 그들이 프랑스 생활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곳에서의 대인관계가 너무 편해서라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늘 함께하는 문화안에서 사생활이 보장되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이나 의견의 제약을 많이 받게 되는데, 프랑스에서는 상대방의 생각과 가치관, 사생활을 인정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은 자연스레 종교 생활 안까지 영역을 넓힌다. 천주교 신자 중 성당을 나오지 않는 이들의 다수는 하느님이나 교리에 대한 회의 때문이 아니라 성당 사람(신부, 수녀를 포함)에게서 받은 상처나 실망감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당에 가서 마음으로 죄를 짓느니 차라리 집에서 혼자 하느님을 섬기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인 것이다.

사실 타인과의 관계는 종교에서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심에 서야할 주제다. 십자가에서 위에서 아래로 세워진 나무가 신과 인간을 연결한다면, 좌우로 펼쳐진 나무는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상징이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 5,23-24)

형제가 너에게 상처 입어 원망 품고 서운해하고 있는데, 어떻게 넌 태연히 제단에 예물을 바칠 수 있느냐는 말씀인 것이다.

당시 유다인들은 자기들과 종교나 종족이 다른 이들을 이방인으로 취급하고 무시하며 죄인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유명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를 들려주시며, 그들의 생각을 바로잡고자 하신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하는 한 율법 교사의 질문에 예수님은, 길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 레위인이나 사제(유다인들에게 ‘이웃’이었던!)이 아닌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준 사마리아인(유다인들에게 ‘이방인’이었던!)이라고 말씀하시며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신다.

타인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은, 종교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일깨우는 말씀이기도 하다. 한국과 같이 갖가지 이념적, 정치적, 지역적, 세대 간의 갈등과 분열로, 싸움과 폭력으로 점철된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은 무엇보다 이러한 흐름에 맞서 화합과 일치, 평화를 위해 투신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위한 마중물로 준비해야 할 것은 타인이 나에게 경쟁이나 싸움 상대가 아닌, 인간으로서 살아야 할 진정 인간다운 삶의 길을 알려주는 거울임을 일깨우는 것이 아닐까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른 사람을 개종시키려 하지 말고 그들의 신념을 존중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선교사가 해야 할 일은 자기 교회의 신도수를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널리 베푸는 것이다. 프랑스의 조셉 도레 대주교도 말하였다. "친구가 내게 다가오는 것을 볼 때, 내가 머릿속에 갖는 첫 생각은 ‘그를 어떻게 전교할까?’가 결코 아닐 것이다"

우리는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각자의 길은 다르지만, 그렇다고 함께 걸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자의 길이 소중하고 가치 있기에 서로에게 배울 수 있고, 함께 걷는 이들이 있기에 외롭지 않게 같은 방향을 보며 같은 꿈을 꾸고 살 수 있는 것이다. 부디 종교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평화와 일치의 길에 투신하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그리하여 우리 사회가 더욱 밝아지기를 희망해본다.

한민택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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