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중심지에서 동쪽으로 14km 지점에 지평리가 있다. 경의중앙선 철로가 동에서 서로 관통하고, 도로가 마을을 중심으로 십자형으로 교차한다. 마을은 고만고만한 산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지름 3km 가량의 분지 안에 위치한다. 옛 읍치(邑治)였기에 향교가 있고 그 아래로 펼쳐진 풍경이 여느 마을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 작은 분지에서 6.25전쟁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는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었다.

지평리전투는 1951년 2월 13일부터 프랑스군 대대가 포함된 미군 제23연대의 UN군과 중공군 3개 사단이 사흘 간 벌인 전투이다. 결과는 UN군의 승전이었다. 사상자수로 단순 비교해도 UN군 측 사상자가 300여 명에 불과한 반면 적군은 무려 5천여 명에 달했다.

후대의 평가 역시 극명하게 갈린다. 먼저 UN군은 10배가 넘는 압도적 병력이 동원된 중공군의 파상공세를 전술적으로 물리친 최초의 전투로 기록한다. 이를 바탕으로 3개월 후 벌어진 용문산전투에서 다시금 승리하면서 현재의 휴전선을 확보할 수 있었던 동력을 준 전투란 것이다.

반면, 중국측은 이 전투를 ‘최악의 손실을 입은 너무나 뼈아픈 패배’이자 전쟁의 양상을 바꾼 전투라고 한다. 이 한 번의 패배로 그간 공세 위주였던 전쟁 전략을 버릴 수밖에 없었고, 남진(南進)을 포기한 채 수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전쟁 총사령관이었던 펑더화이(彭德懷)를 크게 질책하였다는 후문이다.

자랑스런 승전의 역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치 사회적 관계의 산물로서 재생산되어 현재에 구현된다. 매년 2월이면 지평리전투 전적비 앞에서 지평리전투 전승기념식과 전몰장병에 대한 추모식이 성대히 열린다. 양평군과 지역 참전용사회, 국방부 등 국내 유관기관은 물론이고 주한미군사령부와 프랑스대사관 등 지평리전투 당사자들이 모여 이 전투에서 산화한 호국영령을 기린다.

추모비 앞에 고개 숙인 벽안(碧眼)의 노병(老兵) 어깨가 떨리고 뒤로 도열한 장성과 고위급 관료의 얼굴이 엄숙하다. 허리가 굽은 국군 참전용사들 역시 이날만큼은 힘주어 허리를 꼿꼿이 편 채 늠름하게 거수경례를 올린다. 후배 장병들은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를 대규모로 재현하며 평화 지킴이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추모식에는 사회통념상 쉽사리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것이 있다. 바로 적군(敵軍) 희생자를 위한 위령제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비록 공식행사의 순서에 없기 때문에 본 행사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소박하게 마련되었지만 중공군의 위패를 모셔 놓고 넋을 기리며 향불을 피우고 술을 올린다. 더 놀라운 사실은 위령제를 지내는 주체이다. 이들은 종교단체도 아니고 일반시민 단체도 아니다. 어쩌면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을지도 모르는 6.25참전용사회의 노병들이 자발적으로 이 진혼제를 지내고 있는 것이다.
 

2014년 지평리전투 추모제 당시 중공군을 위령하는 지평참전용사회
2014년 지평리전투 추모제 당시 중공군을 위령하는 지평참전용사회

이는 화해와 평화를 위하여 아무런 대가 없이 피해자가 가해자를 위령하는 매우 놀라운 사례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도 힘들다. 러시아와 룩셈부르크에 있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묘지는 시신을 단순히 매장한 것이다. 일본의 원령무해화(怨靈無害化)를 위한 적군전사자 공양 관행이나 원폭피해 시설에서 말하는 ‘평화’와는 아예 그 본질에서 차이가 있다. 지평리에서 실천해 온 이 평화를 위한 위령이야말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정한 평화적 행동의 실천이자 인도주의의 표상일 것이다.

우리는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 그래서 평화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고 지향해야할 목표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전국 각지에 전쟁기념물이 끊임없이 건립된다. 문제는 우리는 이미 반공을 앞세운 통치의 이데올로기로 전쟁기념물들이 오용(誤用)되었던 전례를 너무 많이 봐왔다는 것이다. 지금 세대에게는 구태(舊態)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런데 지평리에 전쟁기념물이 조성된다면 분명히 이전과는 조금 다를 것 같다. 승자와 패자,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는 힘의 이분법적 논리를 넘어서, 본격적으로 적군까지 포용하는, 즉 사람에 초점을 맞춘 ‘지평리의 평화’라면 세계를 관통하는 새로운 개념의 평화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강웅 양평군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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