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순례의 시작이자 끝

전국에는 원효대사의 흔적이나 전설이 서린 수많은 사찰들이 있다. 본지 경기도 아름다운 사찰 기사를 통해서도 신륵사, 원효사, 염불사, 아미타사 등 도내 원효대사 관련 사찰들을 소개해 왔다. 한국불교사에서 가장 유명한 고승이자 사상가로서 원효대사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고찰도 드물다. 그럼에도 그 옛날, 스님 한 분이 그토록 많은 절과 산을 언제 다 돌아다녔을까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생애 전반을 저잣거리에 뛰어들어 부처의 가르침을 대중에 전하고, 당나라 유학 결심 후 유학길에 오르느라 경주에서 평택을 오갔던 원효대사이기에 전국 사찰 일주가 무리는 아니었을 것 같다. 그 일주의 종착지이자 시발점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원효의 사상과 명성을 낳게 한 ‘원효대사 깨달음 성지’, 평택 수도사다.

 

그는 왜 이곳에서 유학을 포기했을까

모두가 알다시피 원효대사의 당나라 유학은 이뤄지지 않았다. 바다 뱃길을 눈앞에 두고 잠을 청했던 그날 밤, 갈증을 느낀 원효는 어둠 속에서 물 한 바가지를 마신다. 다음날 그 물이 해골에 고인 물임을 알게 된 그는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 ‘마음이 생기면 우주 만물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해골 물과 깨끗한 물이 서로 다르지 않으니 세상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먹기에 달렸구나!’ 그리하여 동행했던 의상대사만이 당나라로 향하고 원효대사는 다시 서라벌(경주)로 돌아갔다.

수도사는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오도성지로 추정하는 사찰이다. 661년, 그러니까 1360년 전에 두 스님이 하룻밤을 묵은 무덤가 혹은 토굴이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시의 경로를 통해 대략의 위치를 추정해볼 수는 있다. 신라시대, 서라벌에서 당나라로 향하는 경로를 짚어보면 크게 경주-상주-보은-청주-목천-천안-평택을 거쳐 팽성의 경양포나 곤지진에서 배를 타고 평택의 신흥포(현재의 아산 둔포면)나 계두진에 내렸다. 그 다음 포승방면으로 향해 최종적으로 당나라행 배를 타는 코스가 대중적이었다고 전한다. 그 길 위에 수도사가 자리했다는 점에서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물론 스님들이 다른 경로를 따랐을 수도 있고 수도사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묵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오도처일 확률이 높은 장소들 중에서 원효의 업적과 깨달음의 내용을 알리는 전시관을 운영하고, 주변 관광지와 연계해 천 년 전 구도의 길을 되살린 곳은 수도사가 유일하다.

수도사 대숲 안에 마련된 해탈수관
수도사 대숲 안에 마련된 해탈수관

 

신라까지 이어진 실크로드, 그 위의 원효길

수도사에서 평택항이 멀지 않다. 자동차로는 15분, 도보길인 ‘원효길’을 따라서는 3시간 30분 쯤 걸린다. 원효길은 평택의 마을 곳곳을 도는 도보길 ‘평택섶길’의 12개 코스 중 한 코스다. 평택호예술공원에서 평택항을 거쳐 수도사를 잇는 총 길이 22km의 이 길은 원효와 의상이 불법을 찾아 걸은 길이라 해서 원효길로 명명되었다.

평택항은 옛날부터 국제무역의 허브였다. 중부권에서 중국을 단거리로 갈 수 있는 항구로 많은 물자가 오가고 유학생 교류가 잦았다. 의상대사도, 또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혜초스님도 이곳에서 바다를 건넜다. 즉, 로마에서 경주를 잇는 실크로드의 주요 기항지 중 한 곳이 평택·당진항이었다. 서라벌(경주)에서부터 먼 길을 걸어온 원효대사도 이윽고 대진(평택항)에 닿았을 때는 퍽 의미심장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미 한 차례 고구려 국경을 넘다 간첩으로 오해를 받고 유학이 불발된 경험이 있던 원효에겐 꼭 당으로 가야한다는 절실함이 있었다. 그 간절함을 찰나에 뒤집은 원효 마음 속 깨달음의 실체를 오늘을 사는 중생이 헤아리긴 어렵다. 그저 말로 전해 듣고 머리로 이해할 뿐이다. 득도한 이와 그렇지 못한 이 사이의 심연 또한 분별하려는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리라. 다만 그가 걸었던 원효길을 걸으며 천년을 거쳐 회자되는 어느 ‘자유인’의 모습을 더듬어 보는 것이다. 원효길은 하루만에 종주하기에는 장거리라서 보통 수도사에서 평택항까지 1구간, 평택항에서 평택호예술공원까지 2구간으로 나누어 걷는다.

평택호예술공원에는 혜초기념비가 있다. 2009년 열린 제4회 UN실크로드 메이어스 평택포럼을 기념해 세운 비로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를 여행한 혜초스님의 생애와 업적이 적혀 있다. 일각에서는 혜초기념비 옆에 원효대사의 동상이나 관련 시설을 세워 ‘실크로드’와 ‘원효대사’로 상징되는 국제도시 평택을 좀더 알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두 키워드가 부각된 관광지는 현재로선 수도사 외에 전무하다. 지난 10월 16일 수도사에서는 제1회 평택 역사문화로드 학술대회가 열렸고 불교계, 학계 전문가들이 모여 이와 관련한 논의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평택호예술공원에 혜초·원효·의상 스님의 구법 열정을 예술조형물로 기념할 것을 제안했다. 오는 10월 30일 토요일에는 수도사에서 원효길 체험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전통사찰음식학습체험관 옆의 장독대
전통사찰음식학습체험관 옆의 장독대

 

해골물을 마시고 물멍 즐기는 ‘해탈의 시간’

수도사에는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이 있다. 원효대사의 명성을 생각하면 그에 대한 기념관이나 박물관이 오랫동안 부재했음이 의문스럽다. 다행히 2017년, 정부예산지원으로 원효대사깨달음체험관이 수도사 경내에 문을 열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원효대사를 조명하고 깨달음의 순간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알찬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토굴체험실이다. 어두운 통로를 지나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묵었던 토굴 재현실로 들어서면 짧은 애니메이션이 상영된다. 영상을 통해 그 유명한 해골물 깨우침이 일어나는 순간, 관람객이 서있던 바닥 내부에 조명이 켜지면서 해골 모형이 드러난다. 왜 이곳이 기념관이나 박물관이 아닌 ‘체험관’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체험관 뒤로 가람을 내려다볼 수 있는 숲길이 나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멀리 남양호가 보이고 대웅전 뒤편을 지나면 대나무가 우거진 작은 숲이 이어진다. 그리고 곧 해탈수(解脫水)라 명패를 건 사각의 반듯한 벽돌건물이 등장한다. 원효대사가 마신 해골물을 해탈수라고 표현한 것인데 건물 내에는 이 해탈수를 상징하는 작은 인공못이 조성되어있다. 천장은 못과 같은 형태로 뚫려 하늘이 훤히 보이고 못 주변에는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만들어져 있다. 명상의 공간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물멍(물을 보며 멍하게 있는 다는 의미)’도 할 수 있고 ‘하늘멍(하늘을 보며 멍하게 있는 다는 의미)’도 할 수 있다. 시선을 어디에 두든 마음이 차분해지고 사각사각, 바람에 흔들리는 대숲의 소리만이 귀를 간질인다.

해탈수 옆에는 특이한 식수 공간이 있다. 물은 페달을 밟으면 해골 모형의 한 귀퉁이에서 흘러나온다. 정수된 물로 안심하고 마실 수 있지만 어쩐지 기분이 묘하다.

아궁이로 사찰음식을 만드는 수도사 주지 적문스님.
아궁이로 사찰음식을 만드는 수도사 주지 적문스님.

 

물맛이 달아 음식도 맛있나, 사찰음식의 성지

해탈수 건물 옆에는 무대처럼 설치된 나무 데크 위에 야외 조리대가 놓여 있다. 사찰음식을 만들고 시식하는 오픈 스튜디오다. 우거진 대숲 안에서 바람소리 새소리 들으며 제철 식재료로 만든 사찰음식을 맛볼 수 있다니, 상상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힐링 푸드니 마음 테라피니 하는 말들이 퍽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산사 대숲에서 유부버섯조림, 토란튀김 등을 먹으며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힐링이지 싶다. 수도사 주지 적문스님은 오랫동안 사찰음식을 연구해온 사찰음식 권위자다. 경기도 지정 슬로우 푸드 체험기관, 대한불교조계종 문화사업단 지정 전통사찰음식 특화사찰인 수도사는 적문스님의 직접적인 지도로 다양한 사찰음식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사찰음식은 원효대사와 함께 수도사를 대표하는 키워드다. 대나무숲 오픈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사찰음식 시연 프로그램은 보통 ‘원효대사 무애무(무애사상을 표현한 춤) 공연’과 사찰 산책으로 묶인 1시간 코스로 참여할 수 있다. 원효대사와 사찰음식을 주제로 공연과 체험을 두루 즐길 수 있어 수도사에 처음 방문한 이들에겐 더 없이 알찬 시간이다.

일일 사찰음식 쿠킹클래스에 참여할 수도 있다. 수도사에 별도로 세워진 전통사찰음식학습체험관 안에는 개인별 조리대와 모니터를 갖춘 최신 설비의 클래스룸이 있다. 일일 클래스는 보통 세 가지의 사찰음식을 조리하고 시식한다. 전문가 과정으로 3개월 기본반, 6개월 심화반 강좌도 있다. 전 과정을 수료하면 사찰음식 지도자 자격증 시험 자격이 주어진다. 체험관 옆에는 크고 작은 장독들이 보기 좋게 놓여 있고 장작으로 불을 때는 재래식 초가 부엌이 있다. 모두 사찰음식을 위한 것들이다. 문득 물맛이 좋은 곳은 장맛도 좋다는 말이 떠오른다.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달콤하게 마신 이유가 원체 수도사 일대의 물맛이 좋아서는 아닐까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적문스님은 매년 한중일 사찰음식 전시회도 열고 있다. 각 나라별 사찰음식의 특징을 살려 만든 실물 음식을 하루 동안 전시, 시식하는 행사다. 지난해 전시에는 ‘코로나19 면역력 증진 강화를 위한’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타국의 사찰음식까지 다루는 전시는 드물어서 큰 관심을 모았고 올 11월 27일 예정인 두 번째 전시 또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과연 실크로드 위에 세워진 사찰답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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