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불법 내몰리는 노동현실

사진=중부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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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에 있는 가족들을 보지 못하는 게 제일 힘들죠. 빌린 돈을 다 갚기 전까지는 못 나가요."

지난 28일 안산에서 만난 중국 국적 노동자 A씨는 고향에 있는 가족들 생각에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20여 년 전 쪽배를 타고 국내로 넘어왔다. 합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 입국이었다. 현재까지도 ‘불법체류자’로 불리는 A씨는 여전히 입국 과정에서 브로커에게 지불한 돈과 막대한 이자를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1·2차산업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
비자발급 까다로워 불법체류 신분
외국인 취업비자 'E-9·H-2' 합법
한국어 시험 통과 등 발급 힘들고
E-9는 최장 4년10개월 체류 그쳐

A씨는 "단기비자만 받고 한국에 일하러 온 불법체류자들이 많다"며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해주면 불법체류자가 줄어들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날로 심화하는 1차·2차산업 구인난으로 일자리 대부분을 외국인들이 채우는 실정인 가운데 높은 취업비자 기준이 불법체류 문제 해결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30일 중부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도내 공단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단기비자 또는 무비자로 불법 채용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국내 거주 불법체류자 추산 규모는 39만281명→39만2천196명→38만8천700명→41만1천270명→42만3천675명 순이다.

불법체류자가 줄지 않는 이유는 국내 취업에 필요한 비자 발급 조건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관광비자로 불리는 3개월짜리 단기방문(C-3)비자로 한국에 취업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합법적인 외국인 취업 비자로는 E-9(비전문취업), H-2(방문취업) 등이 있다.

3개월 관광비자로 불법취업 횡행
화성 인력사무소 현장투입 근로자
하루 2천명 중 80%가 불법체류자

현재 국내에서 체류하는 외국인들은 E-9 비자를 취득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어 시험 통과 등 까다로운 발급 요건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E-9 비자 소지자들 역시 기본 3년에 추가 1년 10개월까지 체류 갱신이 가능해 최장 4년 10개월 한국에서 일할 수 있지만, 장기체류가 가능한 비자를 취득하지 못하면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단기 체류가 가능한 C-3 비자로 눈을 돌리는 외국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국내에 들어와 잠깐 고된 노동만 참으면 고국에서 몇 년 동안 쓸 수 있는 생활비를 벌 수 있다.

합법적이지 않아 최저임금보다 적게 받는 외국인들도 많지만, 어차피 본국 근로임금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네팔에서 온 B(29)씨도 6개월 전 E-9에서 E-7 비자로 갱신해 체류 기간이 늘었지만, 비자 전환에 실패해 고국으로 돌아가는 동료들이 많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B씨는 "나이 제한도 있다 보니 체류 기간이 지나도 고향으로 귀국하지 않고 한국에 계속 남아 돈을 송금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화성시 향남읍 한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하루에 현장으로 보내지는 근로자가 약 2천 명인데, 이 중 80%는 불법체류자"라며 "C-3 비자로 잠깐 한국에 들러 일용직 생활을 한 뒤 귀국했다가 또다시 국내로 오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최성민 스피드행정사사무소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 수용 기준을 낮춘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 해 불법체류자들을 제도권 안으로 품어 인력난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는 지난 20일 비전문 외국인 노동자의 숙련기능인력 전환 요건을 기존 11개 평가 항목에서 5개 항목으로 간소화하는 등 조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노경민·김유진·설재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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