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여러 아픈 사건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4·3사건이라면 내륙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제주 4·3사건에 대해 수도권 시민들에게 소개하면서 내륙의 여러 아픈 사건 중에서 몇가지를 다시 한번 생각할 시간을 만드는 건 어떨까 하는 고민을 했다. 하지만 현대사의 수 많은 사건 중 어느 것이 크고, 어느 것이 작다고 말할 수 없기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편집자주-

5.18 묘역 
5.18 묘역 

 

◇망월동에서 잊혀지면 안될 사람들을 떠올리다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를 처음 방문했던 건 2001년이었다. 한참 문화재 공부를 하던 시기였는데 담양 소쇄원, 화순 운주사, 영산강유역의 고분 문화재들을 보기 위해 광주를 자주 갈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지인분이 5·18민주묘지를 데리고 가서 그곳에 있는 전시실을 견학할 기회를 만들어줬다.

지금은 여러가지 시각자료들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적인 사건이나 문화재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지만 당시에는 판넬에 사진과 설명 문구가 전부였다.

추모관
추모관

광주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여러 현대사 책들과 소설을 통해 배웠기에 어떤 사건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사진 자료를 통해 알게된 당시 현실은 너무 처참했다.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광주시 일원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으로 당시 군부의 불법적 헌정질서 파괴와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저항한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첫 방문 후 10여 년간 1~2년에 한 번은 꼭 5·18민주묘지 또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곳인 옛 전남도청을 방문했었다.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와 코로나19로 인해 최근 수년간은 방문하지 못했었다.

추적추적 비 오는 5월 오랜만에 5·18민주묘지를 찾았다. 주말이 아닌 탓에 참배객이 많지 않아서 생각하며 걷기 좋았다.

추모관
추모관

5·18민주묘지의 정문 역할을 하는 ‘민주의 문’을 들어서면 바로 민주광장이 나오고 참배광장을 거쳐 5·18민중항쟁추모탑 앞으로 가게 된다.

추모탑은 탑신의 중앙부분 감싸쥔 손 모양의 내부에 설치된 난형의 조형물로 부활을 상징한다. 추모탑 앞에는 방문한 사람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할 수 있도록 헌화를 위한 단상과 향로가 놓여져 있다.

사실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 대부분은 이런 조형물의 형태나 구조적인 의미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닐 거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추념탑 앞의 향로에 향을 피우며 참배를 한 후 곧바로 묘역에 안장된 분들의 영정을 모신 유영봉안소로 발길을 옮겼다. 유영봉안소의 영정을 바라보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추모관
추모관

유영봉안소에서 나와서 추모탑 뒤편에 있는 묘역으로 이동했다. 추모탑 뒤에 위치한 묘역은 5·18민주묘지에 있는 2개 묘역 중 제1묘역이다. 제1묘역은 10개 구역으로 나눠져 있고 778분이 안장되어 있다. 제1묘역에 안장되어 있는 분 중 인연이 있는 분은 없지만 그날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며 묘역을 돌아봤다.

그리고 역사광장과 역사의 문을 거쳐서 5·18추모관으로 들어섰다.

5·18추모관은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민주영령들을 추모하고 그 뜻을 올바르게 계승하기 위해 건립된 공간이다. 5·18민주화운동과 그 희생자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 등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물과 조형물 등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추모관이다.

추모관에서는 그날의 기억과 영상, 사진, 희생자들을 저격한 총알과 유품, 물건 등을 통해서 당시의 참상을 느낄 수 있다.

또 추모관에서는 영상물을 통해 5·18민주화운동 당시의 모습과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고,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다양한 책들을 관람객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읽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추모관
추모관

추모관의 여러 전시물을 보다 한 글귀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여러분은 살아남아야 합니다. 살아 남아서 역사의 증인이 되십시오."

5월27일 계엄군이 시민군의 중심 건물이었던 옛 전남도청으로 진입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성원 씨가 고등학생들에게 한 말이다.

윤 씨는 "고등학생들은 먼저 총을 버리고 투항해라. 우리애는 사살되거나 다행히 살아 남아도 잡혀 죽겠지만 여기 있는 고등학생들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민주주의와 민족 통일의 빛나는 미래를 위해 항쟁의 마지막을 자폭으로 끝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종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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