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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숫자는 한 번의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이상징후가 나타남을 뜻하는 통계적 법칙 ‘하인리히의 법칙’을 나타낸 숫자이다.

이를 보다 쉽게 말하자면 사소한 사고의 징후가 무시되면 결국에는 대형사고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으로 표현하자면 ‘설마가 사람 잡았다’ 정도일까.

우리 사회는 이 법칙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흔히 쓰이는 ‘예견된 인재’라는 수사적 표현은 주기적으로 뉴스에 오르내려 왔고, 부끄럽게도 또 하나의 예견된 인재는 2024년 6월 24일에 또다시 발생했다.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리튬 일차전지 배터리 생산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사고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고 조사가 마무리되어야 사실관계가 더욱 명확히 확인되겠지만, 위 사고 현장의 공장에서 이번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화재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이나 사고 현장의 공장이 과거에 리튬보관 허용량을 초과해 보관하다가 벌금에 처해졌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again, 예견된 인재’일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는 이와 같은 ‘again, 예견된 인재’가 발생할 때마다 이를 부끄러워했고 반성했다. 지난날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세월호 참사 등 예견된 인재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저마다의 슬픔으로 희생자를 위로했으며, 재발방지 방안을 고민해왔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는 2021년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로써 그동안 재해예방을 위한 자원을 동원할 역량은 있으나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안전보건조치의무까지는 부담하지 아니하여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자(경영책임자. 가령, 법인의 대표이사)가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재해가 발생하였을 때 형사처벌이 가능해졌다. 과거 현장소장만을 처벌하던 때와 비교하면 한 걸음 더 나아간 발전이다.

물론,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 역시 존재한다. 경영의지를 위축시킨다던가, 준수해야 할 안전보건조치의 내용이 다소 불명확하다던가, 처벌만이 능사냐거나, 중대재해처벌법이 현장을 잘 모르고 만들어진 법이라는 논리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이 경영의지보다 더 가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는 한, 경영책임자 등은 법령이 정하고 있는 기준에 부합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경영과 사업을 그리고 근로자의 생명과 신체를 지켜내야 한다. 현장에서 도저히 준수할 수 없는 법이라는 변명으로 현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안전보건조치를 강구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상당히 많은데, 이와 같은 상황에서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로 법원 역시 이와 같은 논리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경영책임자 등은 시대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변화할 필요가 있다.

다시 하인리히의 법칙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하인리히의 법칙은 단순히 작은 이상징조들이 누적되면 대형사고가 발생한다는 통계적 관찰의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하인리히의 법칙을 뒤집어 생각하면 작은 이상징조들을 예민히 살피면 대형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이상징조를 예민히 살피는 조직문화와 제도적 장치 및 조치 등 안전보건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과 책임이 있는 일차적 주체는 중대재해처벌법상의 경영책임자 등이다.

화성시 소재 리튬 일차전지 배터리 생산공장 화재 사망자들의 명복을 빌며, 글을 맺는다.

김경돈 법무법인 해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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