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자탑은 뿔, 특히 사각뿔 형태로 층층이 쌓아 올려 끝이 뾰족한 첨탑 가리키는 말인데, 중국에서 피라미드 번역어로 만들었다. 이집트 왕들의 무덤을 옆에서 보면 외형이 삼각형 지붕의 ’金(금)‘자처럼 생겨서 이와 같이 이름지었다. 그러나 이 번역어 ’금자탑‘을 다시 영어로 번역할 때는 피라미드 아닌 ’엄청난 일‘ 내지 ’획기적 성취’가 된다. 본래 유래는 잊혀지고, 피라미드의 누천년 세월 불후와 불멸 이미지만 남은 것이다. 각설하고, 사람의 금자탑 쌓기는 아무래도 상아탑 오르기로 시작해야겠다.

구약성서 ‘아가(雅歌)’는 솔로몬과 연인 술람미의 사랑노래라 한다. 솔로몬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해 "그대 목은 상아 망대(ivory tower) 같다."고 찬탄하였다. 아이보리는 색깔 아닌 코끼리 어금니 상아, 나아가 상아로 된 물건이다. 아이보리는 따듯하고 부드러운 색감과 높은 보존성 때문에 예부터 예술, 종교, 상업적으로 귀하고 비싼 소재로 대접받았다. 아가서의 이 상아망대 곧 상아탑(象牙塔)이 널리 퍼지기는 1837년 시인이자 평론가 생트뵈브의 시에서이다. 『상아탑에 있는 것처럼 더 비밀스러운 비니는, 정오 전에 돌아온다.』라 하였는데, 당시 낭만파 시인 비니의 문학적 태도를 비판한 것이라 한다. 그렇게 일상의 관심사와 분리된 지적 추구 경향을 이르던 말 상아탑이, 오늘날은 거의 학계나 대학의 지칭으로만 쓰이는 것 같다.

1960~70년대 국내에서는 상아탑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도 하였다. 1호 재산인 소를 팔아 학비 대는 교육열, 또 그래서 다니기 어렵던 대학을 한숨 섞어 일컬은 말이다. 부모와 동생들 배곯으며 꼴 베다 소를 먹이고 잔반 날라 돼지도 먹였다. 가족들 등골 빼먹는 소, 팔려간 소의 살을 발라 뼈로 쌓은 탑이 우골탑이다. 그런데 요즘은 대학 졸업까지 소 대여섯 마리는 치일 것 같다. 올해 전국 4년제 사립대학 한 해 등록금이 735만 원 정도이다. 그러나 한편 이 대학 등록금은 또 2009년 이후 15년간 동결돼 왔다. 견디다 못한 대학 상당수가 내년에는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이 낭만과 은둔의 상아탑이던 19세기 유럽에서는, 넉넉한 중산층이나 그들이 후원한 극소수만 대학에 갔을 터다. 경제적 부담은 없고 취직에 대한 관심도 작았을 터다. 그렇다면 캠퍼스에 틀어박혀 진리와 학문 탐구에만 매달려도 충분하다. 그래서 상아탑이란 표현에는 지성과 낭만, 탐구와 토론 같은 긍정성이 담겼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는 오늘날 더러 현실 도외시로 비칠 수도 있겠다. 비싼 수업료와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대학이나 교수의 제자 취업에 대한 무관심은 온당하지 않다. 어떤 사업가가 "신입사원 뽑으면 재교육부터 해야 한다." 말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한 유명 교수가 "대학이 왜 당신들 회사에 맞는 교육까지 시켜야 하나. 그러면 등록금을 대신 내든지."하며 단박에 차버렸다.

무한경쟁시대에 수요자인 기업체의 인적자원 조달 조건 무시하고, 공급자 대학 내지 교수가 제 배움만을 두루뭉수리 개론(槪論)처럼 가르쳐서야 취업이 쉽겠나. 수요자가 원하는 스펙 갖춰줘야 팔릴까 말까, 구시대의 지성과 낭만 상아탑에 안주해 현실과 소통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물론 연구와 강의, 산학협력처럼 각기 전담 분야가 있다. 학문도 인문과 사회와 기술이 서로 다르다. 그러니 교수가 취업만을 염두에 둘 수는 없다. 그래도 사회 진출을 염두에 두고 필요한 경쟁력 갖춰주는 배려와 노력은, 오늘날 여러 교육목적 중에서 가급적 앞에 둬야 할 덕목이다.

유호명 경동대학교 대외협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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