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때에는 유독 신비롭고 기이한 현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회암사에서 법회 중 밝은 빛과 채색 안개가 공중에 가득차고 그 모습을 나타내신 부처님, 오대산 상원사에서 목욕하는 세조의 등을 문질러 피부병을 낫게 해주었다는 문수보살, 자객으로부터 목숨을 구하게 한 고양이, 세조의 가마가 지나가자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린 속리산의 소나무 등등.

이렇게 놀라운 현상이 많은 것은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수많은 충신들을 죽여 왕위에 오른 세조와 그 공신들이, 세상에 역적으로 기록될 자신들의 치부를 뒤엎고 미화하여 흉흉한 민심을 돌리려 했기 때문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이러한 의심에 그럴듯한 상상력을 발휘한 영화가 ‘광대들 : 풍문조작단’(2019)이다.

이 영화에서 최고 권력자 한명회는 "하늘의 뜻이 지금 대왕에게 있음을 알게 해 주게"라며 여론조작을 광대들에게 명(命)한다.

세조의 이미지 변신을 위해 광대패들은 기상천외한 온갖 도구와 장치를 이용하여 조선 팔도를 무대로 풍문을 조작하고 요설(妖說)을 퍼뜨려 역사를 바꾸려 했다.

허구의 영화에 불과하지만, 궤변으로 변질된 수사학(修辭學)을 바탕으로 신기한 진기(珍奇)를 연출한다거나 사기술(詐欺術)을 동원하여 대중의 주목을 끄는 선전(宣傳)의 모습을 보여주어 흥미롭다.

‘선전의 세기’( The Fine Art of Propaganda, 1939)라는 책에서는 고전적 ‘선전의 기법’을 제시한다.

나쁜 이름을 붙이는 ‘비방적 명명’(name calling), 좋은 언어로 포장하는 ‘화려한 추상어’(glittering generality), 권위자와 유명인을 통해 호의를 형성하는 ‘연상적 전이’(transfer), 타인을 통해 좋고 나쁨을 말하게 하는 ‘증언기법’(testimonial), 흙수저를 자처하는 등의 ‘서민적 기법’(plain folks),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만을 채택하는 ‘카드술수’(card stacking), 다수 의견에 동조토록 하는 ‘부화뇌동’(band wagon) 등의 기법으로 우리가 의식치 못하지만 지금도 널리 적용되고 있다.

특히 대선정국을 맞이한 요즘, 영화 속 ‘풍문조작단’처럼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실과 진실을 왜곡, 조작하는 선전의 첨병을 자처하는 광대들이 활개치고 있다.

정론직필(政論直筆)은 구겨버리고 오론곡필(汚論曲筆)을 일삼는 언론인 광대.

인권과 사회정의는 팽개치고 방송가, 정당판에 똬리를 튼 변호사 광대.

진리탐구는 처박아두고 권력의 발판을 찾는 교수 광대.

어디 이뿐이랴….

그들에겐 옳은 것, 그른 것이 잣대가 아니다.

내편에겐 미사여구를, 네 편에겐 나쁜 놈이라 이름 붙인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내편, 네편에 따를 뿐이다.

명을 받들 뿐이고 자신의 권세를 탐한다.

그들은 여론지도자(opinion leader)가 아니라 여론독살자(poisoner of opinion)이다.

그들은 우릴 대변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민심도 조작할 수 있다고 믿는 ‘풍문조작단, 광대들’에 불과하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면 광대들에게 놀아나게 된다. 나의 운명을 광대에게 맡기는 꼴이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라고 반문한다면 ‘사실과 진실 그리고 진리를 꿰뚫어야 한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릴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라는 막연한 말로 나의 빈약한 한계를 고백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국민을 대변하고, 나는 나를 대변한다."

80년대 한 교수가 쓴 ‘대변인’이란 시다.

암울했던 시절, 이 교수는 이 짧은 시로 곤혹을 치뤘다.

대변이란 단어가 代辯, 大便이란 중의적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나의 쾌변을 위해….

적어도 대통령으로부터 오물 뒤집어쓰지 않게 되길 바랄 뿐이다.

정상환 국제대 교수, 전 청와대 행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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