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과 문명의 경계에서 바라본 세계사
에발트 프리|동아엠앤비|508쪽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했던가, 산업혁명 이래 유럽이 세계의 역사를 주도한 만큼 세계사 역시 유럽인의 시각으로 쓰여 왔다.

‘야만과 문명의 경계에서 바라본 세계사’는 유럽인의 시각으로 쓰여 졌던 세계사에서 벗어나 세계사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총 20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14장을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문명과 역사에 할애하고 있다.

각 장에서는 ▶로마인이 잔뜩 겁에 질린 채 해안가를 따라 노를 젓고 있을 때 태평양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떨어진 섬들을 항해했던 폴리네시아인 ▶바빌론과 이집트에서 지어진 것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아메리카 대륙에 세워진 도시와 피라미드 ▶종교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서유럽과 달리 헝가리에서 인도 남부까지 연결해 번성했던 다문화 무역지대를 소개한다.

이처럼 각 대륙의 찬란한 문명의 역사는 그동안 문명으로 규정된 유럽과 야만으로 기록된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역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허물어낸다.

오히려 이 책의 저자 에발트 프리는 다른 입장에서 봤을 때 당연히 야만인으로 비쳤던 유럽인에 대해서도 다룬다.

나아가 무엇이 야만이고 문명인가로 이어지는 질문은 독자들이 덤으로 즐길 수 있는 고민거리로 제시한다.

현재의 세계는 유럽의 발견과 정복, 혁명과 전쟁이 이끌어낸 변화로 마치 하나의 커다란 도시가 된 듯하다.

그 변화로 현재의 메가시티가 발현한 듯 하지만 이 메가시티들은 유럽이 아니 다른 곳에서 수천 년 전에도 이미 큰 도시가 존재했던 곳임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이 책은 최초의 인류부터 현재까지 세계사를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글로벌한 시선에서 바라보며 새롭게 설명하고 있다.

또 상호 교역을 하고 전쟁을 치르고 서로에게서 배우던 번창하는 왕국과 휘황찬란한 메트로폴리스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아테네가 저 멀리 가장자리로 느껴지고 또 꿈처럼 아름다운 아프리카 킬와 왕국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저, 미치도록 환한 사내
김윤배|휴먼앤북스|172쪽


사물놀이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고(故) 김용배의 일생을 조망한 시집이 출간됐다. 시인 김윤배의 시집 ‘저, 미치도록 환한 사내’다.

우리나라 국악의 대표 격으로 꼽히는 사물놀이는 풍물놀이에 뿌리를 둔다.

1970년대 산업화시대를 맞으며 자연히 쇠퇴하던 풍물놀이를 계승하기 위해 현대적으로 변화를 가한 것이 사물놀이다.

이를 주도한 예인이 김용배, 이광수, 김득수, 최종실 4인인데, 김 시인은 이들을 음악적으로 리드한 김용배의 삶에 집중했다.

사물놀이 창시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도 35세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천재적 타악기 주자 김용배는 과연 누구인가? 그의 삶에는 어떤 비의가 숨어있는가? 시집은 이런 물음들에 차근차근 답한다. 김 시인은 김용배의 가까운 후배 남기수의 증언과 김헌선의 저서 ‘김용배의 삶과 예술’을 토대로 김용배의 죽음과 그의 예술혼을 서사시를 통해 재조명했다.

흔히 한 인간의 생애를 다루는 서사의 경우 사실을 축으로 삼는다. 이는 하나의 시적 틀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 시인은 이런 틀을 도외시하고 있다.

김 시인의 시에는 인물의 생애적 사실보다는 정서적 진술이 집중적으로 표출된다.

이 작품이 장시로 표현된 이유도 이런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화자의 진술에서 환유나 은유 등 시적 수사를 빈번하게 사용하기 위함이다. 또한 김 시인은 이전에도 ‘사당 바우덕이’ ‘시베리아의 침묵’ 등의 장시를 써낸바 있다.
 

기압골의 서쪽은 맑거나 맛있거나
임경남|도서출판 북인|120쪽


임경남 시인의 첫 시집 ‘기압골의 서쪽은 맑거나 맛있거나’가 세상에 나왔다. 2005년 ‘문학예술’에서 시 부문 신인상으로 시단에 발을 디딘 이후 16년 만이다.

이번 시집에서는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이 불러온 관점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 변화는 곧 전환과 확장으로 이어지는데 주관에서 객관으로, 자아에서 타자로, 관념에서 실행으로 변화하는 식이다.

임 시인의 시는 ‘시적 대상의 시적 화자화’가 돋보인다. 시적 대상을 관념적으로 보지 않고 객관적으로 파악하며 대상에 대한 심리적 거리 또한 화자를 통해 농밀하게 표현한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 ‘금요일의 일기예보’에도 이런 시작법이 나타난다.

‘금요일의 일기예보’에서 시적 화자는 ‘나’ 이고 시적 대상은 ‘금요일’이지만 이 둘은 분리되지 않는다.

‘저녁 내내 불온해지고 싶은 내가’ 꿈꾸는 자유와 일탈을 시작 대상에 투영해 표현했다.

임 시인의 또 다른 탁월함은 시적 대상을 직접 진술하지 않고 객관화해 표현한다는 점이다. 시적 역동성을 조용히 가동하고 절제된 시적 문법을 사용해 겉으로 표출하지 않는 슬픔과 불안을 그려낸다.

이번 시집에서 임 시인은 "시인 임경남은 명사이고 시를 좋아하는 임경남은 동사"라고 했다. 세상의 풍경들이 ‘동사 임경남’을 만나자 한 편의 시가 됐다는 설명이다.

독자 역시 ‘기압골의 서쪽은 맑거나 맛있거나’를 통해 ‘동사로서의 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0대를 위한 한 줄 과학
알렉시스 로젠봄|이야기공간|208페이지


‘10대를 위한 한 줄 과학’은 과학에 사람 냄새를 불어넣은 책이다.

과학의 대중화에 관심 많은 과학철학자 알렉시스 로젠봄이 44개의 명언을 통해 과학의 역사를 설명한다.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과학사의 흐름에 따라 구성돼 있지만 시기보다는 명언을 남긴 과학자에 초점을 맞춰 전개해 나간다.

또한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명언부터 낯설지만 중요한 발견과 사건을 다룬 명언까지 다양하게 포함해 어렵고 지루할 것 같은 과학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아리스토텔레스,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 등의 명언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알 수 있다.

첫 번째 명언 ‘유레카! 유레카’에서 저자는 ‘고대 과학자 아르키메데스는 무엇을 찾아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로부터 알려지지 않았던 아르키메데스의 사연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이 책을 추천한 이봉선 진로·학습상담가 선생님은 비문학 독서 영역을 공부하기에 적합한 책이라고 말했다.

수능 모의고사에서 과학기술 지문이 나오면 다 읽기도 전에 포기하는 학생들을 종종 봐 왔는데 그들이 한 줄 과학, 즉 과학자들의 명언에 숨은 의미를 읽고 나면 어떤 과학기술 지문이 나와도 자신 있게 풀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책을 이루는 과학자들의 명언은 간결한 한 문장이 돼 과학사를 다시 그린다.

 

서윤영의 청소년 건축 특강
서윤영|철수와영희|180페이지


‘서윤영의 청소년 건축 특강’은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인의 민족성을 말살하려고 훼손한 조선의 궁궐들과 식민 지배를 위해 지은 열 가지 건축물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해방 이후 일제가 지은 건축물의 청산 과정을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쉽게 알려 준다.

이 책은 ‘20세기 일본 제국주의의 특징’에서 시작해 ‘해방 후 일제 건축의 청산’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성균관, 조선 신궁, 박문사, 종로와 명동, 경성역 등의 각 건축물에 담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일제는 조선의 궁궐 대부분을 훼손했다. 경복궁은 흥례문과 전각들을 허물고 조선총독부를 지었고 덕수궁은 미술관으로, 창경궁은 동물원으로 만들었다.

또한 식민 지배를 위해서 태조 이성계와 단군왕검을 모시는 국사당이 있는 남산에 일본 신과 메이지 일왕을 기리는 조선 신궁을 지었고 조선 최고 교육 기관 성균관은 교육 기능을 없애고 그 앞에 경성제국대학을 만들었다.

그들이 훼손한 궁궐들은 지금도 복원 중이다.

일본이 지은 조선총독부는 해방 이후 중앙청과 박물관으로 사용하다가 50년 만에 철거했고 일제의 주요 건축물 중 철거되지 않고 남은 건물들은 박물관이나 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를 건축으로 살펴본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건축이 당시 시대 상황과 어떻게 맞물려 작용하는지 알려 준다.

이 책은 건축가가 되고 싶거나 건축의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청소년들에게 건축을 인문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안형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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