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정책의 목적에는 꼭 범죄에 대한 응보주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강력범죄자들에 대한 엄벌은 필요하지만 범죄의 재발을 막는 것 역시도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특히 피해자가 힘없는 약자일 때는 더욱 그렇다. 하물며 한 집에 가해자가 함께 살면 어떻게 될까?

많은 이들은 인간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임을 신봉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그렇지 아니하다. 만일 가해자가 나에게 폭행도 간헐적으로 하지만 내 모든 욕구를 해결해주는 유일한 자원이라고 상상해보라. 가끔 괴물로 변하는 순간만 두 눈 꾹 감고 참아내면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준다면...

가끔 터무니없는 사건들을 만나게 된다. 이단의 신념 틀 속에서 교주의 일탈을 신고하기보다 오히려 촉진하는 참모들, 자녀를 성폭행 하는 배우자의 범죄를 오히려 은폐하면서 피해자인 자녀를 가정파괴범으로 취급하는 엄마들, 이상한 사건들은 너무도 많다. 이런 사건들은 대다수 공동의 이익을 철저히 누리기 위해 피해와 가해를 장기적으로 공유하는 독특한 집단범죄이다. 누군가는 성매매에 내몰려야 하루의 안락함을 보장받는 ‘가출팸’을 상상해보라. 병리적인 삶을 오래 공유할수록 집단몰입은 심해지고 서로가 서로에 대한 상호의존의 정도는 심해져서 죄의식도 원망도 희석된다.

아동학대 역시 비슷한 메커니즘을 지닌다. 신고 후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면 가해자는 그런 일 없다고 딱 잡아 띤다. 문제는 피해자인데, 아동학대 사건의 피해 진술 확보는 유달리 어렵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진술능력이 부족하거나 혹은 자신이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부재한 때문이다. 소년원에 입소한 대다수 소년범들이 피학대의 경험이 없다고 답하는 이유는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당연히 받아야 하는 가정의 보호가 애당초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아동학대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조사를 하고 사건화하지 않는다. 따로이 성폭력 사건의 수사지침처럼 구체화된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종사자들의 의견을 참고 하라고는 되어 있으나 굳이 그들의 의견을 판단의 근거로 삼을 필요는 없다. 폭력이 난무한 일반 폭력사건에 비하면 훈육 목적이라 주장하는 부모들의 폭행 흔적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양천구 입양아 아동학대 사건도 세 번이나 신고가 되었지만 경찰은 이 사건을 내사 종결하고 대신 아보전으로 사건의 책임을 넘기고 말았다. 그 와중에 피해아동은 구조의 타이밍을 놓치게 된 것이다.

아니나 다르게 이번에도 정치권에서는 형량을 두 배로 올려야 하느니 치사 대신 살인죄를 적용해야 하느니 시끌벅적 하다. 그런다고 아동학대가 줄어들까? 칠곡 계모 사건 이후 우리나라의 사법체제는 아동학대사건에 대한 엄벌주의 기조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형벌의 수위가 높아진 반면 아동학대 치사사건도 증가하였다. 넌센스 한 일이다. 한 자릿수이던 사건 수가 일 년에 사오십 건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신고로 늘어난 사건 수에 대하여 경찰의 불송치율이나 검찰의 형사사건화 비율은 오히려 줄어들어 주요 사건이 묻혀버렸기 때문일 수 있다. 신고된 사건의 거의 90퍼센트에서 피해아동은 가해부모와 분리가 되지 않은 채 학대가 심화되거나 그런 와중에 아이들이 가출을 하여 피해현장을 떠났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피학대화의 과정 초기에 안전한 보육환경으로 이동시킬 수는 없을까? 쉽지 않다는 것이 답이다. 시설도 부족하고 지자체의 담당공무원의 이해도도 떨어진다. 산적한 수많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외국이 굳이 형사사법기관의 개입 후 이 같은 절차를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법처분에 강력히 저항하는 아동학대 가해자들은 꼭 법적으로 통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보전의 민간인이나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밀어두지 말고 아동학대를 사법권이 개입해야 하는 범죄사건으로 여길 때만이 아동의 인명피해는 더 이상 늘지 않을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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