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소년은 경기도내 시골의 한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지게에 나무를 지고 오솔길을 따라가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중학교에 진학한 또래 친구들이 마주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가난이 항상 그 소년의 뒤를 따라 다녔기 때문에 그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땔감을 해오는 등의 집안일을 해오고 있는 중이었다. 소년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모습과 마주 오는 친구들을 비교해 볼 때 비참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해 그들과 마주치는 것이 싫어서 그들의 시선을 피해 논두렁길로 우회하여 지게를 지고 달렸다.

소년은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서 지인의 소개를 받아 어렵게 서울소재 서대문 인근의 사무실에서 청소부 일을 하게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정식직원들이 사무실에 출근하기 전에 사무실, 책상 등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을 하는 것이 그의 업무였다. 일은 힘들었지만 꿈은 잃지 않았다.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녀 인근에 있는 야간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늦깎이로 야간법대에 진학하였다. 남들은 고시공부도 하고 있었지만 그는 공부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 없고 오직 일터에서 일하면서 학비를 버느라 여념이 없었다.

주경야독의 힘겨운 생활을 하면서도 그 고학생은 학교당국의 책임자를 찾아가 돈이 없어서 공부를 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 사업을 추진해 달라고 요구하였고, 본인도 직접 낮에 번 돈의 일부를 장학금으로 쾌척하기에 이르렀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기업을 일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끝에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그는 기업을 경영하면서도 장학 사업에 눈을 떼지 않았다. 그가 자란 고장에 장학회를 만들어 어려운 학생들이 돈 때문에 공부하지 못하는 일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아낌없이 지원했다. 뿐만 아니라, 본인이 졸업한 고등학교에도 장학금을 기부하여 상당한 기금을 조성하였다. 또 모교대학에 야간대학 장학금, 우수 장학금 등을 출연하여 장학기금을 조성하여 그 수익금으로 매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나아가, 동창회나 모임이 있을 때 기금이 모자란 듯싶으면 그는 그 경비를 솔선수범하여 부담하곤 했다. 이와 같은 그의 행위 때문에 가끔은 지역이나 동창회 등 모임에서 정치적 진출을 노리거나 감투를 쓰려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는 일체의 명예직함을 맡지 않았다. 오직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뿐이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경조사에도 꼭 성의를 표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에게는 10여회의 조의금·축의금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했다. 휴일 날 약속을 잡은 날이면 본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뿐 승용차나 운전기사를 부르지도 않는다.

본인에게 몇 가지 일생철학이 있었다. 본인이 부모님 상을 당했거나 자녀결혼식 등을 치를 때에 절대 지인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부의금·축의금을 받지 않는다. 자신은 베풀지만 타인에게는 절대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또, 담배와 커피를 절대 안한다.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라고 믿어지는 것들이다. 그는 쓰죽회의 회원으로 살고 싶다고 농담 섞인 말을 하곤 한다. 도대체 쓰죽회의 정체는 무엇이냐고 질문하니, 쓰고 죽자는 모임이고, 당대에 번 돈을 죽기 전에 의미 있게 쓰고 죽자는 좌우명을 가진 사람들의 가상 모임을 뜻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자식들은 남매가 있지만 그들도 아버지의 철학에 절대 공감하며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자식들도 자신들을 교육시켜 결혼시켜 살도록 해 주었으니 고마운 것이며, 아버지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면서 아버지가 번 돈은 아버지가 생전에 사회에 의미 있고 보람되게 쓰시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유년시절에 돈에 고통을 받으면서 성장했고, 천신만고 끝에 돈 버는데 정력을 쏟았으면, 돈에 대한 애착이 더 심할 성도 싶은데, 도대체 그토록 선행을 할 수 있는 심연이 무엇인가 질문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명했다.「돈이란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아무리 힘들게 벌었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어른들은“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내가 사망한 후에 위 구절이 그대로 내 묘비명에 쓰여 지기를 원한다.」

돈 때문에 가족 간에 우애가 깨지고 빈부의 격차로 인하여 사회적 갈등과 반목이 야기되고 심지어 경제적 이유로 범죄까지 발생하는 것이 요즘 세태이다. 위 기업가의 이야기는 한줄기 소나기처럼 우리들의 가슴에 시원한 울림을 준다.

위철환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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