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융합기술원에 입주한 첫번째 창업가...사업 초기단계부터 철저한 리스크관리 중점
IT강국 한국, 정밀 소재산업은 일본에 밀려

시작이 반이라면 그는 반쯤 성공했다. 정세영 엔트리움 대표 얘기다. 경기도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융기원)에서 만난 그는 서울대학교 소속 융합기술연구원내 입주한 1호 창업가다. 서울대 재료공학과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를 10년 다녔다.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된 나이(불혹)에 퇴직했다. 그는 치열한 창업 준비과정을 운구복일(運九福一)에 빗댔다. 정 대표에게 ‘창업(創業)’과 도전정신에 대해 물었다.

―삼성 퇴직이 쉽지 않았을 텐데.

“50여개국을 다녔는데 모든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었다. 전형적인 삶을 살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초기 창업자들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프로젝트나 자금을 유치할 때 어머니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면 안 되는 것들이 많더라. 엄격한 잣대가 요구되는 분야가 창업이다. 어머니의 관점으로만 이해하려 해서 삼성전자에서 근무할 때도 힘들 때가 종종 있었다. 다행히 삼성전자에서 10년 동안 일하면서 체득한 아버지의 마음이 일을 추진하는데 도움을 줬다. 개인 성향으로만 따지자면 사실 사업에 맞는 사람은 아니다.”

―창업 아이템은 어디에서 찾았나

“대부분 창업가들이 창업은 운구기일(運九技一)이라고 했다. 서울대 재학당시 나노분야를 공부했다. 10년간 삼성에서도 비슷한 분야를 연구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하나(―)였다.”

―2013년 창업 이후로 현재까지 시련은 없었나.

“2014년 12월 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전 2개월간 직원 월급과 이자를 줄 돈도 없었다. 다행히도 10월 부가세 환급이 들어오면서 큰 어려움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이처럼 정말 운이 좋았다고 느켰던 순간이 없었다. 창업자들을 만나면 예전에는 운구기일이라 했는데 사업을 할수록 운구복일이 느껴진다고 하더라.”

그는 비행기를 팔기위해 창업했는데, 만약을 대비한 낙하산도 꼼꼼히 준비했다. 그는 리스크를 줄이고 줄이고 또 줄였다.

―창업실패시 리스크가 너무 크다.

“사회안전망도 있어야 하지만 창업 자체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다들 대기업에 취업할 때에 10년 동안 다니던 삼성에서 나와 사업체를 꾸리지 않았나.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기대보단 스스로 사업의 위험성을 최대한 낮춰야 한다.”

그는 2012년 중소기업청 청년창업사관학교에 2기로 입학했다. 같이 창업을 준비했던 300팀 중 지금까지 20여팀이 남았다.

그는 “95%가 실패하는 게 창업이다. 천천히 오래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현재 고안한 아이템에서 파생된 또 다른 아이템, 지속적인 수익모델에 대한 고민 등 이윤 창출 수단을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가.

“Man·Money·Space다. Man은 최소 한명이라도 함께 일을 해야 한다. 혼자 사업을 하게 되면 일 진행이 늘어지는 경우가 많다. 동업자가 아니라, 대표는 1인으로 하더라도 함께 일하는 동료를 구해야 한다.”

정대표는 사업초기 중소기업청으로부터 1억 원씩 2억원, 엔젤투자사로부터 2년간 5억원, 투자전문업체 캡스톤 파트너스로부터 3억원 지난해 산업은행으로부터 35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투자유치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투자 유치를 어떻게 했나

“투자유치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자신의 쌈짓돈(자본금)과 가족이나 지인에게 빌리는 방법, 엔젤투자자로부터 받는 방법, 중소기업청·차세대융합기술원과 같은 기관에서 지원을 받는 방법, 은행이나 사금융 대출 등이다.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90%는 은행 대출에 의존하지만 가장 위험하다. 부모가 부자이면 좋겠지만 대다수 청년창업가들은 그렇지 않다. 정부지원금을 노리는 게 초기 창업자에겐 가장 적합하다. 중소기업청에서 매월 초기 창업기업 100곳을 선정해 2억씩 지원해준다.”

―현 기업 정서상 기업투자 유치가 쉽지 않은데

“투자관련 전문가들은 소위 스펙이 좋은 사람들이다. 미국에서 MBA를 전공한 투자 전문가들이다. 하지만 실제로 투자 유치 이후 왜 우리 회사에 투자했냐고 물어보면 논리적이지만은 않다. “엔트리움 대표가 ‘돈을 떼먹지 않게 생겼다.’ ‘이 회사는 투자금으로는 딴 짓하지 않을 것 같다’와 같은 답변이 돌아온다.” 혹은 투자자 중 10억 정도 투자는 투자대상 기업의 패를 보는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버리는 돈인 셈 치고 제품이 시판 된 이후 시장에서 성장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투자 유치 시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사업을 성공시키겠다는 간절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투자전문가들은 수많은 스타트업과 벤처사업가들의 사업설명PT를 들은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가장 중점으로 보는 점은 이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는 의지와 이에 따라서 수익액이 나올 수 있느냐이다.현재 900조에서 1천조 사이의 자금의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고 한다. 한국투자증권, 아주IB와 같은 곳의 최소 투자금액은 50억에서 100억대다. IR(투자유치를 위한 기업설명활동)시 구체적인 이익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최소예상수익이 투자금 대비 3배는 돼야 투자한다. 예를 들어 2천억대 시장 규모 중 10%를 점유할 수 있다는 청사진을 보여주고 예상 영업이익과 회사가치를 숫자로 보여줘야 한다.”

―융기원에 사무실을 마련했는데

“창업 초기에는 어떤 부분이든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융합기술연구원에서 연구할 수 있는 공간과 사무실을 무상 지원 받아 사무실 임대료나 관리비 등 고정비를 최소화했다. 나노기술은 정밀 분석하는 기계와 시제품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또한 주요 고객인 삼성전자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융기원이 있어 대기업 프로젝트를 유치하기가 더욱 수월했다.”

정 대표는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내에 있는 에너지반도체연구센터에서 기술개발에 나섰다. 1년간 연구 끝에 나노 입자 주변을 코팅해 전기 전동성과 탄성을 가진 ‘코어셀 입자’를 적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융기원에서 상용화 가능성과 사업성 등을 판단한 뒤 창업 환경을 마련해주는 연구원 창업지원제도를 통해 사무실 공간 지원 등을 받아 2013년 2월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내 1호 창업가가 됐다. 이 미세입자 코팅기술을 바탕으로 일본 중견소재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이방성 전도 필름(ACF)용 도전성 입자시장에 엔트리움은 ‘가격과 기술 우위’를 선언하면서 도전장을 내밀었다. 스마트폰, 노트북PC 등 거의 모든 디스플레이와 카메라 모듈 내부에 ACF가 사용된다. 전 세계 연간 시장규모는 약 1조원이다. ACF 시장의 90% 이상은 일본의 히타치 등 두 업체가 차지하고 있다.

“한국이 IT강국을 자처하면서도 완제품에 들어가는 수 많은 정밀 소재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일본 소재 산업은 대부분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에서 나오는데 이들은 정밀화학에 집중해서 고수익을 거두고 있다. 새로운 기업이 진입하면 가격인하 등 진입장벽을 치는데 탄탄한 기술력을 갖추면 충분히 공략 가능하다. 1조 원 규모 시장에 10%만 차지해도 1천억원이다.”

안원경 수습기자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