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듯 순한 눈빛과 그렇듯 겸허한 손등 아래로
아직 피지 않은 동백, 고개 밑을 표표히 지나
때 이른 봄날 품속을 마중 나온 서행의 나비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노니는 석불과 석불 사이

내 소망의 끝은 동백, 그 작은 그늘에
생의 무게 싣지 않고 가벼이 건너가
절두된 석불의 목덜미에 나의 천년을
반듯하게 접목하는 것
졸음처럼 쏟아지고 쏟아지는 천년의 푸르름을 지나
마침표가 있는 서방정토에 가 닿는 것

그 순한 천년의 눈빛과 여린 동백의 눈빛을
탁본으로 떠 다시 울울창창하게 소리 내어 우는 것


륵 치맛단에 흐르는
천년의 곡선을 새기고 또 새겨 넣는 일

나는 천년의 겹주름을 풀어 헤치며
천년의 나를 지나왔다

 


김인구 시인 

1991년 ‘시와 의식’ 여름호 ‘비, 여자’ 외 2편 발표
시집 ‘다시 꽃으로 태어나는 너에게’, ‘신림동 연가’, ‘아름다운 비밀’, ‘굿바이 자화상’(2014년 세종 우수도서 선정) 외 공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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