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평택 보국사

너른 평택을 바라보고 자리잡은 보국사. 담장 안에 부처님궐, 칠성각, 요사채, 무생불전이 아기자기 모여있는 아담한 절이다. 사진=주수완
너른 평택을 바라보고 자리잡은 보국사. 담장 안에 부처님궐, 칠성각, 요사채, 무생불전이 아기자기 모여있는 아담한 절이다. 사진=주수완

중국의 동진(東晉)시대에 활동한 법현(法顯, 337~422) 스님은 무려 나이 60세 무렵에 인도 순례를 떠나 14년 뒤에 귀국해 ‘불국기(佛國記)’라는 여행기를 남겼다. 우리나라로 치면 삼국시대인데 그 당시에 일찍이 인도에 가서 진정한 불교가 무엇인지 배우고, 성지순례도 했던 스님 덕분에 우리는 당시의 인도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법현스님은 인도로 갈 때는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통해, 올 때는 동남아시아를 지나는 바닷길을 통해 다녀왔기 때문에 이 두 곳의 정보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불국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평소 이 법현스님을 흠모해 왔다. 그런데 우연히 한국에도 같은 한자를 쓰는 법현스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이미 알고 있던 역사 속의 국제적인 승려였던 법현 스님과는 달리 평택의 보국사라는 작은 절의 주지스님이시라고 해서 국제적이라기 보다는 로컬한 스님이신가보다 했다. 그러다가 보국사와 이런저런 인연이 있게 되면서 법현 스님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는데, 알수록 알 수 없는 스님이셨다. 스님은 서울 은평구 역촌시장 안에도 ‘열린선원’이라는 도심 선원을 운영하고 계셨고(재건축으로 현재는 신사동으로 이전),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는 ‘세계선원’을 운영하고 계시다.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일본에 있는 나가노현 ‘금강사’라는 사찰의 주지스님이기도 하다. 금강사가 있는 나가노는 2차대전 당시 일본이 천왕을 포함한 최고지도부의 최후 보루로서 지하기지 마츠시로 대본영을 건설했던 곳이다. 지하기지 건설을 위해 강제동원됐다가 사망한 한국인 300여명을 추모하기 위해 나가노 지역의 교민들이 세운 절인데, 좋은 뜻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문제 등으로 운영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 주지 소임을 법현스님이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현재는 한·일 상호 소통과 화해의 장으로서 매년 7월 15일이면 서로 오가며 법회를 진행하고 있다.

보국사 앞 텃밭. 다양한 꽃과 채소가 자라고 있어 주택가 가운데 마치 허파처럼 자리잡고 있다. 사진=주수완
보국사 앞 텃밭. 다양한 꽃과 채소가 자라고 있어 주택가 가운데 마치 허파처럼 자리잡고 있다. 사진=주수완

◇평택을 바라보고 자리잡은 보국사=법현스님은 나아가 때때로 초청을 받아 평택의 미군기지에서 법회를 열기도 한다. 이처럼 스님의 활동반경이 평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서울과 인천, 나아가 일본과 미국 사람들에게까지 이르니 그야말로 국제적인 스님이라 하겠다. 그래도 그 중심에는 보국사가 있으니, 경기도 평택이 세계로 나아가는데 일조를 하고 계신 셈이다.

이렇게 많은 사찰을 운영하시니 언뜻 매우 안정적인 수행생활을 추구하시는 스님일 것 같은데, 이 스님의 별명이 ‘저잣거리 수행법사’다. 그만큼 정해진 곳 없이 대중들 속에 파고 들어가 함께 느끼고 생활하며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스님으로 정평이 나있다.

어렸을 때부터 평택에서 자란 스님은 집안 살림이 어려웠기 때문에 당시 취업이 잘 되어 인기가 높았던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고 한다. 당시 합격은 했지만 등록금도 없었는데, 소식을 들은 중1 때의 담임선생님과 고등학교 때부터 다니던 명법사 스님의 도움으로 겨우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스님이 될 운명이셨는지 공부하시는 중에도 불교활동을 이어가다 결국 출가를 결심하게 되셨는데, 대신 돌봐드려야 했던 부모님과 가족을 생각해 세상과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태고종으로 출가를 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저잣거리 수행자 법현 스님 뿐 아니라 태고종단 자체가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중생과 함께 하는 불교를 표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님은 이런 태고종의 특징을 살려 자신의 가족 뿐 아니라 모든 중생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부처님 말씀을 전하신 덕분에 아마 저잣거리 수행법사라는 명예로운 별칭도 생기셨을 것이다.

보국사는 1921년에 비구니 대정월이(大淨月耳, 속명 김정호) 스님께서 세우신 사찰이었는데, 나라를 위한다는 절의 이름은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기에 부처님 가피로 나라를 돕겠다는 뜻으로 창건주 스님이 지은 것이었다. 그래서 절도 임금님이 계시는 서울 경복궁을 향한다는 의미로 북쪽을 향해 지어졌다.

필자가 몇 년 전에 처음 장등산 보국사를 찾아갔을 때는 깊은 산중에 있는 사찰인가 싶을 정도로 구불구불한 마을 길을 따라 들어갔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장등산은 언덕같이 나지막한 산이었고, 절은 그 기슭에 있는 경작지와 주택들이 아기자기하게 자리잡은 평화로운 마을 한 가운데 있었다. 서울의 열린선원도, 평택의 보국사도 중생들과 가까이 있다. 이런 보국사는 이제 법현스님을 만나 국제적인 감각까지 더하게 되었다.

편액과 주련을 한글로 써서 단 보국사 법당과 종무소(오른쪽), 요사채. 사진=주수완
편액과 주련을 한글로 써서 단 보국사 법당과 종무소(오른쪽), 요사채. 사진=주수완

◇가장 새롭지만 가장 전통적인=흥미롭게도 보국사의 법당 편액은 "부처님궐"이라는 한글로 쓰여 있다. 실제로 이것이 국제적인 활동을 하는 법현 스님의 절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현스님은 ‘보국사’라는 절이름도 ‘나라돕는 절’이라는 한글 이름을 추가하여 널리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보국사 부처님궐은 2023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전통적인 팔작지붕 형태로 세워졌는데, 그 전에는 1957년에 중창된 작은 대웅전 법당이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편액과 절 이름 뿐 아니라 부처님궐 안팍에 걸린 주련도 모두 한글로 되어 있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한 것도 법현 스님의 배려다.

이러한 한글화 작업이 수긍이 가면서도 어려운 것은 익숙한 한자 표현에 비해 한글이 오히려 생소하고, 때로는 발음도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법현 스님이 한글로 만들어 놓으면 그런 어색함이 없다. 어디서 저런 아이디어가 나왔을까 싶게 친근한, 그러나 원래의 뜻을 잘 살린 번역이다. 그래서 알고보니 스님은 또한 시인이기도 하다. 유튜브에서 "Han’s Breez 어떤 인연"을 검색하면 스님이 지은 시에 한정일 작곡가가 곡을 붙여 만든 "어떤 인연"이라는 가수 박보윤씨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그외에도 지강훈씨가 부른 "앉으라 고요" 역시 스님의 가사에 곡을 붙인 것이며, 탄허스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한 노래 "허공을 삼키시니"의 가사도 법현스님이 쓰신 것이다. 아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노래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통찰하신 결과일 것이다. 물론 앞서 어려운 한문 주련을 한글로 입에 착착 감기게 번역한 것도 이런 시인의 감성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이렇게 가장 새로우면서도 가장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는 스님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진다.

보국사 주지 무상 법현스님. 사진=주수완
보국사 주지 무상 법현스님. 사진=주수완

스님은 불교의식을 우리말로 쉽게 풀어 쓴 ‘한글법요집’도 별도로 편찬할 정도로 한글사랑이 지극하다. 이러한 한글사랑 역시 저잣거리에서 포교를 위해 어떻게 하면 쉽게 부처님 말씀을 중생들에게 전할까 하는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일본 나가노 금강사에서의 조선인 강제징용 희생자 추모 법회. 사진=주수완
일본 나가노 금강사에서의 조선인 강제징용 희생자 추모 법회. 사진=주수완

◇지역·세계·이웃 종교와 소통하며=지난 부처님 오신날 보국사 연등행사에서는 불교의례와 함께 음악회도 열렸는데 특히 주목된 것은 김영주 원로목사를 초청하여 축사를 들은 것이다. 태고종과 다른 불교 종단과의 화합을 넘어 이렇게 이웃종교와의 소통까지 중요시하는 것도 스님다운 생각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당일 1부 법회가 끝나고 이어진 2부행사에서는 전통 예능 보유자 분들이 함께 어우러져 흥겨운 가락과 춤이 이어졌다. 보국사가 법당을 넘어 불자와 주민들의 즐거운 엔터테인먼트 공간이 된 순간이었다. 이처럼 보국사를 구심점으로 많은 분들이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스님 스스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지역사회에 녹아든 사찰이고 행사라면 앞으로 평택에서의 불교의 미래는 그만큼 밝지 않을까?

보국사를 방문한 분이라면 특별한 스님을 만날 수도 있는데, 바로 체코인으로 한국에서 출가한 대승스님이다. 대승스님은 체코에 있을 때 숭산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현지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한 교수와 인연이 되어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은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는데, 한국의 불교 종단 중에서 비구니 스님이 교구장까지 맡고 있는 열려있는 마인드를 지닌 태고종에 마음이 기울어 태고종 북미·유럽교구장의 소개로 법현스님을 찾아와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작년에 선암사에서 수계를 받고 정식으로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도 법현 스님의 국제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는 한 부분이다.

올해 부처님 오신날 행사에 참여한 체코 출신의 대승스님. 법현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워 작년에 수계를 받았다. 사진=주수완
올해 부처님 오신날 행사에 참여한 체코 출신의 대승스님. 법현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워 작년에 수계를 받았다. 사진=주수완

이렇게 보면 고대 중국과 인도를 오갔던 법현스님이나 지금 이 시대의 법현스님이나 모두 넓은 네트워크를 만들고 미련없이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설법한다는 의미에서 다르지 않은 행보를 이어가는 분들이다. 고대의 구법승은 현대의 저잣거리 수행자로, 과거의 실크로드는 현대의 종교화합과 민족간 화해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스님은 서울 열린선원에서는 이미 인문학강좌를 열어 저명인사를 초청한 강연회를 열어오고 있는데, 앞으로는 보국사에서도 이런 인문학강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보국사는 국제적인 사찰로서 경기도의 문화, 종교, 인문학 발전에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중부일보 독자들께서도 소식에 귀기울이셨다가 그참에 보국사를 한번 방문하셔서, 기계공학과 출신으로 시인의 감성을 지닌 법현 주지스님도 만나 차 한잔 드시고 오시길 추천드리고 싶다.

주수완 우석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