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 얼굴에 김 묻었어요."

"그래, 어디에서 김가루가 날라와서 묻었을까, 챙피하게"

삼겹살데이 봉사활동을 위해 지난 5월 21일 정심여자중고등학교에 방문했다. 그런데 봉사현장에서 처음 만난 소년원생 선미(가명)가 필자의 얼굴을 쳐다보자마자 놀리는 표정으로 능청스러운 말을 건넸다.

필자는 깜짝 놀라 연신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으나 손에 김가루가 묻어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주변에 거울이 없어 얼굴을 들여다볼 수가 없는지라 답답하기만 하여 끙끙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선미는 다시 한번 필자의 얼굴을 쳐다 보고 웃으면서 그 해답을 내놓았다.

"변호사님 얼굴에 잘생김이 묻었어요. 손으로 지울 수 없는 잘생김 말이에요."

처음에는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필자로서는 잘생‘김’이라는 ‘김’의 뜻을 뒤늦게야 알아차리고서는 깔깔대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소년들 사이에는 서로 유머로 주고받는 은어인 듯했지만 필자로서는 처음 듣는 것이라서 깜짝 당황했었던 것이다. 더 웃기는 상황은 계속 이어졌다.

옆에 앉아있는 소년원생 인화(가명)는 "언니 그런 말을 하다가 이따가 반론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라고 선미를 힐난한다. 아마도 인화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볼 때 필자를 잘생김으로 표현하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선미가 필자에게 기분 좋으라고 아양을 떠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한바탕 상견례의 해프닝이 지나가고 우리는 4명이 한 조가 되어 삽겹살 굽기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필자와 같은 조의 원생들은 고등반 학생으로 16살, 17살, 18살이었고 이 곳에서 열심히 공부해 고입 검정고시를 합격한 후 착실하게 고등학교 과정을 밟고 있었다.

하필 이 날 따라 날씨가 무척 무더웠기에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작업을 했지만 뜨거운 열 때문에 불쾌 지수가 매우 높은 여건이었다. 필자는 앞치마를 두르고 양손에 토시를 끼고 오른손에는 가위를 쥐고 왼손에는 집게를 들고 불판 위에 계속 고기를 올려놓고 뒤집는 작업을 반복했다. 가위가 위험하기도 하지만 원생들이 되도록 많이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 고기 굽는 작업은 필자가 전담했다. 이윽고 고기가 누릇누릇하게 익어갔다.

선미는 애교가 철철 넘쳤다. 상추에 마늘, 김치 등을 넣고 삼겹살을 싸서 작업 중인 필자의 입에 연신 넣어주곤 했다. 필자 등 변호사 20여명이 봉사 명목으로 왔지만, 오히려 힐링을 받는 기분이었다. 저렇게 착하고 예쁘고 마음씨 착한 소년들이 어찌하여 한순간의 실수로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믿기지가 않았다.

안양여자소년원인 정심여자중고등학교는 소년법 및 보호소년 처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가정법원 및 지방법원 소년부의 보호처분에 의하여 송치된 소년을 수용해 교정교육을 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소속 특수교육 기관이다.

필자가 10여년 전에 지방변호사회 공익활동위원장을 맡았을 때부터 정심여자중고등학교에서 삼겹살데이 봉사활동의 인연이 시작되었는데 이후 계속 이어졌다.

한편 이날 삼겹살굽기 행사에 앞서 소년원생 중 우수한 성적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한 8명의 소년원생에게 변호사회에서 제공한 장학금을 전달하는 행사도 가졌다. 비록 간단한 행사이지만 소년원생 학생들의 진지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니 이런 행사가 그 어느 행사보다도 의미 있고 보람있게 생각되었다.

소년법은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의 환경조정과 품행교정을 위한 보호처분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함으로써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기반을 두고 있다. 소년법의 적용대상은 사실심 판결 시를 기준으로 14세 이상부터 19세 미만인 소년범이다.

19세 미만인 소년범에게 교화와 교육으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조치가 보호처분이다. 소년보호처분의 내용은 1-10호의 10가지 종류가 있는데, 보호자에게 위탁해 사회 내에서 생활하도록 하는 사회내 처분(1-5호), 주거를 제한하는 주거제한 처분(6-10호)이 있다. 주거제한 처분 중 8-10호가 소년원송치 처분이다. 8호는 1개월 이내의 소년원송치, 9호는 6개월 이내의 단기 소년원송치, 10호는 2년 이내의 장기 소년원송치이다.

생각건대,‘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말해 주듯이 소년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공동체적 양육정신이 필요하므로, 소년에게 사랑스런 마음으로 위로하고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 결국 소년이 건강해야 나라가 강건해진다.

위철환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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