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경 ‘신문읽기’, ‘신문읽기 행위얽이 개념서’. 정경아 기자
성능경 ‘신문읽기’, ‘신문읽기 행위얽이 개념서’. 정경아 기자

"상상력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랑 작가가 그렇다. 첫 만남(포스터 촬영)에서 의자를 걸치고 쓰는 걸보며 감탄했었다. ‘이런 상상력이 있구나’ 깜짝 놀랐다."(성능경)

"그동안 해온 작업들을 미술관에서 전시로 선보이는 자체가 특별한 일이다. 이번 전시로 성능경 작가님을 처음 만났는데, 예술에 대한 태도 등 배우는 것들이 참 많았다."(이랑)

42년의 나이, 시각예술과 대중음악이라는 장르를 뛰어 넘어 원로 작가와 청년 뮤지션이 만났다.

전시 ‘2024 아워세트 : 성능경x이랑’ 전경. 정경아 기자
전시 ‘2024 아워세트 : 성능경x이랑’ 전경. 정경아 기자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에서 진행 중인 전시 ‘2024 아워세트 : 성능경×이랑’을 통해서다. ‘아워세트’는 수원시립미술관이 지난 2022년부터 선보인 창작자 간 협업 시리즈로 현대미술의 실험적 경향을 소개한다.

올해는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 개관 5주년을 기념하며 1세대 전위예술가 성능경(1944~)과 싱어송라이터 이랑(1986~)의 2인전을 진행한다.

전시는 세대 차이와 장르를 떠나 ‘예술과 자본주의’, ‘예술과 사회’, ‘예술과 일상’을 다루는 두 작가의 공통 감각과 방법론에 주목한다.

전시 ‘2024 아워세트 : 성능경x이랑’ 전경. 정경아 기자
전시 ‘2024 아워세트 : 성능경x이랑’ 전경. 정경아 기자

성능경은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로, 자본주의에 종속되지 않는 비물질 예술을 197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50여 년간 지속해 왔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이 공동기획한 ‘한국 실험미술 1960-1970’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랑은 차별, 가난, 죽음, 불안을 직시하는 노래 가사로, 사회 구조에 의문을 제기한다. 청년세대가 처한 현실에 위로를 건네고 연대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지난 2017년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현장에서 수상 트로피를 경매에 부친 일화가 유명하다.

이렇듯 성능경과 이랑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저항’이다.

성능경, ‘대동여지도: 통일 korea’, 2024. 정경아 기자
성능경, ‘대동여지도: 통일 korea’, 2024. 정경아 기자

두 작가의 저항 정신이 가장 돋보이는 공간은 성능경의 1970~1980년대 신문-사진-행위가 연결된 비물질 예술실험 ‘신문읽기’, ‘현장’, ‘8면의 신문’과 이랑의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가 동시에 펼쳐지는 ‘편집술’ 섹션이다.

특히, ‘신문읽기’는 당일 발행된 신문을 읽고 오리는 행위로 검열과 통제의 시대에 저항했던 성능경의 대표작 ‘신문:1974.6.1. 이후’의 후속작이다. 신문 기사를 소리 내어 읽고, 읽은 부분을 면도칼로 오리는 행위를 반복한다. 작가가 육필로 ‘신문읽기’ 퍼포먼스의 개념을 쓴 ‘신문읽기 행위얽이 개념서’도 함께 볼 수 있다.

전시 ‘2024 아워세트 : 성능경x이랑’ 전경. 정경아 기자
전시 ‘2024 아워세트 : 성능경x이랑’ 전경. 정경아 기자

성능경은 "숨을 쉴 수가 없는 시대의 분위기였다. 그 속에서 정부의 통제를 받는 언론이 전하는 신문은 실제 정보와 굉장한 괴리가 있었다. 정권이 검열한 신문을 2차 검열함으로써 정부 당국을 고발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를 바탕으로 울려 퍼지는 ‘늑대가 나타났다’는 당연한 요구와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을 ‘마녀’, ‘폭도’, ‘이단’, ‘늑대’로 몰아가는 부조리한 현실을 우화처럼 담아냈다.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과 ‘최우수 포크 음반’ 부문 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함께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곡을 제작했다"는 이랑의 바람과 달리, 지난 2022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 공연 출연이 일방적으로 취소되며 논란이 일었고, 현재 이랑은 행사 주최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성능경 작가가 지난달 열린 ‘2024 아워세트 : 성능경x이랑’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정경아 기자
성능경 작가가 지난달 열린 ‘2024 아워세트 : 성능경x이랑’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정경아 기자

두 작가가 ‘따로 또 같이’ 풀어내는 저항의 외침은 세대·성별·이념이 충돌하는 시대적 단절과 한반도 분단, 통일의 상대성도 살핀다.

‘가깝거나 먼’ 섹션에서는 생수병에서 남북분단의 과거와 현재, 이데올로기를 포착한 성능경의 ‘백두산’과 재일동포의 정체성·세대·국적의 경계를 언어로 전하는 이랑의 ‘임진강’이 포개어진다. 1861년 김정호가 편찬·간행한 22첩의 ‘대동여지도’를 원본 크기와 동일한 크기로 제작한 성능경의 신작 ‘대동여지도: 통일 korea’도 볼 수 있다.

가수 이랑이 지난달 열린 ‘2024 아워세트 : 성능경x이랑’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설명 하고 있다. 정경아 기자
가수 이랑이 지난달 열린 ‘2024 아워세트 : 성능경x이랑’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설명 하고 있다. 정경아 기자

이외에도 섹션 ‘분신술’에서는 장르 간 경계를 넘나드는 두 작가의 전방위 예술가적 면모를 잇고, ‘시간예술’에서는 매일매일의 기록과 시간, 그 경계에서 지속되는 창작을 보여준다.

전시는 오는 8월 4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정경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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