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語 事大主義>

이마트는 문구류 제품들이 있는 곳에 ‘stationery’란 간판을 걸었다. 논란이 되자 "이국적인 분위기를 내고 싶어 영어 표기를 했다"며 한글도 함께 표기하겠다고 해명했다.

‘stationery’가 문구류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우리말 표기가 없는 커피숍도 많다. flat, beverage, M.S.G.R 등등. 베버리지는 커피와 다른 건가? M.S.G.R은 물어보니 미숫가루의 영어 약자라고 한다.

요즘은 우리말 아파트 이름을 찾기도 어렵다. 시어머니가 못 찾아오도록 영어 아파트 이름을 선호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옛이야기가 돼버렸다.

센트레빌 아스테리움·퍼스트베뉴·에코델타 센터포인트·그린코아 에듀파크 등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 가장 긴 이름은 파주시에 있는 ‘초롱꽃마을 6단지 GTX운정역 금강펜테리움센트럴파크’로 총 25자다.

왜 이럴까? 뭔가 있어 보이려고, 아파트 가격이 오를 것이란 근거 없는 믿음, 남들도 하니까 등 이유는 여러 가지다. 어떤 사람은 ‘영어 사대주의’라고 잘라 말한다.

누구보다 우리말을 지켜야 할 공공기관이나 공기업도 외국어가 넘쳐난다. 코레일·K-Water·캠코·kepco·SH공사 등 얼핏 외국계 기업의 이름 같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일단 능력자이자 선망의 대상이 되고 동시에 질투와 시기의 표적이 된다. 사대주의는 언어에서도 존재한다.

‘사대’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중국 춘추시대 역사를 기록한 ‘좌전(左傳)’이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긴다는 뜻인데 작은 나라인 우리가 중국이나 거란, 몽골 등 당시 강대국을 섬긴다는 공식 대외정책이다.

사대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었다. 하지만 국가 외교전략인 ‘사대’가 ‘사대주의’로 바뀌면 곤란하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의 언어로 행세해 본 적은 그리 오래지 않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지만 구한말 전까지 한문을 모르면 관리도 될 수 없었고 사람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외세에 의한 해방이 아니었다면 일제 강점기 때 창씨개명과 조선어 말살 정책으로 한글은 고문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언어가 됐을지도 모른다.

뜻 모를 알파벳 축약형으로 우리의 정체성이 사라진 기업과 브랜드들, 번역을 아예 포기한 영화 제목, 촌스럽고 난해한 아파트 이름들 모두 종속적 가치관을 보여주는 언어사대주의다.

하나의 언어가 사라지면 인간의 사고와 세계를 이해하는 도구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 영어가 세계 보편어가 돼버린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고리타분한 것일 수도 있다.

과거 우리말에서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일반명사만 70%가 넘었다. 그중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가 대부분이다. 세계·사회·존재·철학·개인·근대·연애·자연·자유·권리·야구·축구·원고·피고 등등.

지금은 영어가 대세다. 글로벌 스탠더드·시스템·네트워크·스타일·프로젝트·디테일·거버넌스·업그레이드·럭셔리·아바타·콘셉트·캐스팅·게스트·프레젠테이션·터닝포인트·모럴해저드·블랙 컨슈머 등등.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만들었던 한자어는 외국어 번역 과정에서 만든 새로운 글자였다. 우리말에는 없던 단어다.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도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를 쓴다.

하지만 위에서 영어로 표기한 단어 상당수는 우리말 표기가 가능한 것들이다. 우리말이 사라지고 영어로 대체되고 있는 이런 상황은 가속화되고 있다.

90여 년 전 이상(李箱)의 소설 ‘날개’에는 ‘위트와 패러독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왜 우리말인 ‘재치와 역설’로 하지 않았을까? 당시엔 일제 강점기라 영어를 조금만 알아도 식자 소리를 들었을 때였고 이는 다분히 지적 허영의 산물이었다.

지금 우리의 국력과 위상은 굳이 불필요한 데까지 영어를 쓸 만큼 약하지 않고 그럴 이유도 없다. 안 써서 사라져가는 우리말을 다시 찾아야 한다.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읽었던 알퐁스 도데가 쓴 ‘마지막 수업’의 아멜 선생님이 말한 대목이 생각난다.

"한 민족이 노예가 되었을 때 그 나라 말을 능히 보유하는 것은 마치 그들이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란다."

전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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