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조카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통상적인 결혼식이 아니라 가족과 지인들을 초대하여 결혼을 알리고 축하받는 파티를 하겠단다. 가족 간에 다소 설왕설래가 오고 갔지만 결혼 당사자들의 결정은 존중되었고 나는 낯설지만, 바야흐로 새로운 결혼문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당연히 신부의 손을 아버지가 이끌어 신랑에게 인계하는 예식 절차도, 주례나 성혼 선언도 없었다. 다만 간단한 핑거푸드와 음료가 제공되는 스탠딩 파티형식의 지인들로부터 축하받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막상 경험해 보니 우려했던 것과 달리 신선했으며, 참여한 하객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결혼하는 두 사람만의 개성이 담긴 훌륭한 행사라는 생각에 흐뭇했다.

문화인류학자 켄달은 1980년대 중반 무렵, "혼인 국가라 불릴 정도로 거의 모든 사람이 결혼하며, 결혼에 과도한 관심을 지닌 한국"에 관한 연구를 발표한다. 그때는 그랬다. 그 시절에 결혼은 인륜지대사로서 가족의 큰 행사로 치러졌지만, 이제는 기존의 결혼 형식을 탈피하여 새로운 결혼문화가 자리 잡아간다는 생각이다. 그 기저에는 가족이 중심이던 세상에서 ‘개인이 더 중요시되는 시대’로의 이동이라는 흐름도 읽힌다. 오랫동안 내려오던 관혼상제의 관습을 개인이 거부하기는 힘들지만, 사회 문화적으로 삶의 양태에 대변동이 일어날 때 ‘관습화된 무의식’에도 마침내 변화가 일어나는 법이다.

우리네 삶 자체도 그렇지만, 혼인 문화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비대면 문화가 만들어 낸 풍경들까지 사회 전반에 스며들었고, 결혼식 모습 또한 바뀌고 있는 혼인의 개념과 그 형식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어떤 것에 대한 인식 혹은 태도가 바뀔 때 그에 따라 형식도 바뀌기 마련이다. 문득 1968년 해럴드 제만이 기획한 스위스 베른에서 열렸던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가 생각났다. 이 전시는 그동안 예술의 영역에 포함될 수 없었던 ‘머릿속의 생각’이나 ‘과정’ 그 자체가 예술로 제출되는 작품들을 미술관에 들여온 혁신적인 전시 형태를 보여주었다. 이런 급진성 때문에 당시 보수적인 베른시에 논란을 일으키게 되었고 제만은 미술관 관장직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이 전시의 형식은 그 후, 현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로 오늘에까지 이르며, 그를 전설로 남게 하였다.

미술이 주술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또는 장식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언어로 발언하기 시작한 19세기 중반 이래로, 역사적 변곡점을 지날 때마다 미술의 개념과 함께 형식도 변화해 왔다. 특히 20세기 들어서 큐비즘에서 관계 미학에 이르기까지 미술은 끊임없는 자기 탐구 과정을 통해 영역을 넓혀왔고, 이제는 삶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어떠한 형식도 허용되며,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란 ‘인간 집단의 생활양식이며 상징체계’이다. 그리고 천성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기존 문화를 거부할 때는 억압과 징벌이 가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기존의 문화를 거부하고 작은 균열들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면, 어떤 변곡점에 도달하고 결국 장강의 뒷물결은 앞 물결을 밀어내게 된다.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에 대한 의문과 도전은 새로운 싹을 틔우고 기존 질서를 무효화하고, 결국에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게 된다. 이러한 질문과 도전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예술가들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물이 주입되어야 연못이 썩지 않듯이, 예술가들은 새로운 발상과 창의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창을 만들어 낸다. 나의 삶이 풍부해지고, 경직되지 않도록 예술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이다. 불만스럽지만 거부하지 못하고 당연한 듯 따랐던 나와는 달리, 기존의 형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들의 방식대로 결혼의 첫 문을 연 나의 조카와 모든 젊은 부부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다양한 형태의 결혼과 그들의 개성과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를 위하여.

전승보 경기도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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