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라는 영화가 큰 흥행을 거두고 있다. ‘오컬트 미스터리’ 장르로 알려져 있는 이 영화에는 풍수지리를 비롯한 동양의 다양한 종교-문화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전설의 고향’ 수준의 내용을 담은 이 영화가 천만을 넘은 흥행을 거둔 것을 보면, 메타버스나 인공지능과 같이 최첨단 기술 시대의 사람에게도 이러한 종교-문화적 요소가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듯하다. ‘성스러운 것’의 회귀라고 하면 너무나 비약적인 말일까?

이 영화를 본 후 성스러운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성스러움, 거룩함과 같은 말은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예전에는 고을마다 성황당과 같은 성스러운 장소가 존재했다. ‘전설의 고향’은 괴기 미스터리 판타지 드라마라기보다,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는 성스러운 장소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은 사극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많던 성스러운 장소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파묘’와 같은 영화가 흥행을 일으키는 이유는,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구성과 배우들의 열연도 있지만, 인간이란 존재에는 일상의 생활이 채워줄 수 없는 미스터리한 부분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지. 그 미스터리한 부분을 ‘성스러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인간은 본래 성스러운 것에 끌리는 존재, 성스러운 것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지.

누구나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각 도시마다 성당들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에는 도심보다는 산속에 많은 절이 자리한다. 한국 사람은 불교 신도가 아니면서도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며 절을 방문하게 된다. 절을 방문하는 것은 한국인에게 자연스러운 문화다. 필자는 천주교 사제이지만 절에 가는 것이 낯설지 않다. 오히려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성스러움이 몸과 마음에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아무리 첨단기술의 시대를 산다고 해도 인간은 성스러움을 필요로 하는, 아니 성스러움으로 사는 존재가 아닐까. 문제는 우리 시대와 문화가 성스러움에 대한 감각을 잃어간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대인이 갖는 비운이 아닐까.

필자가 종사하는 신학 분야에서도 이 시대에 성스러운 것을 되찾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생명’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신기술의 발달로 생명이 실험 도구가 되어버린, 그야말로 생명이 경시되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지만, 생명이야말로 잠자던 우리의 성스러움에 대한 감각을 일깨울 중요한 실재임에는 틀림없다. 인간은 생명을 연구할 수 있고, 조작할 수는 있지만, 생명 자체를 어찌할 수 없는 하찮은 존재다.

생명 앞에서 우리는 경탄한다. 생명이 잉태되고 탄생하고 양육되고 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생명이 전달되는 과정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생명은 그 자체로 성스러움을 풍긴다.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그저 생명의 신비 앞에서 감탄하고, 생명 전달 과정의 일부가 된 것에 기뻐하며 봉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이야말로 성스러움이 회복되어야 하는 곳이 아닐까. 생명이 새로 시작되는 곳, 생명이 머물며 자라고 성장하며, 생명이 생을 마감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가정은 성스럽다. 한국인에게 신을 벗는다는 것은 성스러운 것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가정에 들어가기 전에 신을 벗는 이유다.

얼마 전 집안 어르신께 병자성사를 드리러 찾아뵌 적이 있다. 요양원의 한 방에 누워계셨던 어르신은 돌아가시기 직전이라 매우 쇠약하셨지만, 살아 계시다는 것 자체로 성스러움을 간직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은 며칠 후 생을 마감하셨고, 가족뿐 아니라 많은 지인은 일상을 멈추고 조문하러 왔다. 가냘픈 생명인 듯 보였지만, 그분의 죽음은 세상을 멈추게 하였다. 조문은 애도를 표하기 위해서지만, 또한 한 생명이 지녔던 성스러움, 그리고 생을 마감하고 떠나고서도 남겨놓은 성스러움을 기리는 행위가 아닐까.

우리 자신도 생명이라는 신비가 머물고 있는 성스러운 존재임을 깨닫는다면, 오늘을 진정 어제와는 달리 새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한민택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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