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성격유형검사도 유행을 탄다. 몇 년 전까지는 애니어그램이 사람들 사이에게 유행하더니 최근에는 MBTI가 화제다. MBTI는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로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와 교류했던 칼 구스타프 융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고안한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 도구다.

자기 자신을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이 어쩌면 자신 스스로일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오래 전부터 자신을 알고 싶어하고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분석 도구에 관심이 많았다. 과거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분석 도구로 12간지(干支)를 요소로 한 사주팔자가 있다. 개인의 운명을 점치거나 결혼할 때 사주에 따른 궁합을 보는 것은 필수적인 일로 여겼다. 지금은 이것을 미신이라고 웃어넘기는 사람마저도 다른 분석 도구는 철석같이 믿기도 한다. 이 중에는 황도 12궁에 따른 별자리별 운세나 타로점처럼 주술적 요소, 혹은 신화적 요소가 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도 있고, 애니어그램, MBTI, TCI 검사처럼 나름의 과학성을 강조하는 것도 있다. 그 외에도 사상체질별 신체 특성이나, 혈액형별 성격을 믿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재미삼아 해보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철석같이 믿는 사람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어 온 것이 혈액형별 성격이다. 고학력에 평소 상당히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도 혈액형별 성격 유형을 굳게 믿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람의 기질과 성격이 단지 혈액형에 의해 결정된다니, 그것도 4가지 유형뿐이라니? 그 어떤 연구에서도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성에 관한 단서를 찾아낸 적은 없다고 한다. 한 방송사에서 제작한 ‘혈액형과 성격의 관련성에 대한 믿음’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는 한국인과 일본인들만이 혈액형과 성격 유형의 관련성을 굳게 믿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심지어 LA 거리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자신의 혈액형을 모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혈액형으로 구분해서 그 많은 사람의 기질과 성격을 단 4개로 유형화하는 것은 너무 터무니없어 보인다. 이것을 9개(애니어그램), 혹은 16개(MBTi) 늘려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인간의 성격 유형을 딱 잘라 9개로, 혹은 16개로 분류할 수 있겠는가?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하고 자신을 좀 더 잘 파악하고 삶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을 너무 굳게 믿으면 많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로젠탈 효과라는 게 있다. 교육학에서는 피그말리온 효과로, 의학에서는 플라시보 효과로 불리기도 하고 ‘자성예언 효과’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즉, 타인(혹은 자신)이 기대한 대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확신한다면 그 자성 예언에 맞게 행동하면서 자신이 원래부터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굳게 믿음으로써 사회적 스킬을 습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 캐럴 드웩은 인간이 성취를 이루는 데 있어서 결정적 요소가 ‘마인드 셋’이라고 주장한다.

타고난 재능 여부와 상관없이 도전과 경험을 통해 성장을 계속함으로써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성장 마인드셋’과 성취를 이루려면 처음부터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 마인드셋’이 그것이다. 또 미시간대학교 조직행동학 교수인 수잔 애쉬포드는 인간의 마인드셋 유형을 인간의 능력이 고정적 자질이라고 믿는 ‘성과 증명 마인드셋’과 가변적 능력이라고 믿는 ‘학습 마인드셋’으로 나눈다.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반복적으로 만나게 되는 도전 과제들을 ‘성과 증명 마인드셋’은 ‘자신의 약점을 들추어내는 시험’이라고 생각하고, ‘학습 마인드셋’은 ‘최선을 다해 새로운 무엇인가를 배울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어떤 성격유형검사를 하든 자신이 ‘어떤 유형으로 고정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의미있는 성장은 불가능하다.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난 원래부터 안 돼’라고 판단하고 성장은 아예 처음부터 포기해 버릴테니 말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도전하고 학습함으로써 자신이 가진 무한한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를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을 성격유형검사의 결과 안에 가두는 것보다는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로 삼는 것은 어떨지? 혹은 친구들과 즐거운 담화의 소재로만 삼는 것은 어떨지?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김현철 포천문화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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