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비극은 쉬운 비교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정치에서 비극은 예기치 않은 틈새에서 싹이 트고 커져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 모든 것을 만드는 자양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에서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특성으로 학문적으로는 이를 ‘확증편향’이라 부른다. 마치 투자시장에서 자기 확신이 큰 걸림돌이 되어 크게 손해 보는 경우도 다르지 않다. 정치에서의 애먼 헛발질도 여기에 속한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아 독립문의 영천시장을 찾아 물가를 점검하는 자리를 가졌다. 마침 해산물 가게 앞에서 멍게를 본 뒤 웃으면서 "아니 뭐 여기에 소주만 한 병 딱 있으면 되겠구만"이라고 말했단다. 기다렸다는 듯이 화살이 날아들었다. 대개의 애주가라면 한 마디 했을 얘기도 윤 대통령이 해서 빚어진 헤프닝이다. 민주당의 주장이라기 보다 꼬집음은 이렇다. 물가고로 신음하는 서민들의 민생을 살피러 간 자리에서 술 마시고 싶다는 얘기를 했어야 하느냐는 지적이다. 해서 나오는 말은 "지나친 술 사랑에 황당하다" "또 사고를 쳤다" "답답하다"는 두드림이다. 당시 현장에서의 웃음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대통령이 술이나 마실 궁리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기막힌 조임으로 묻어난 언저리 뉴스로 얘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런 얘기들이 야당의원들이 모인 회의에서 사고를 쳤네 서민들의 애환은 뒷전이고 지나친 술 사랑이 국민들을 황당하게 한다는 비판으로 갔다는 가십뉴스의 판단은 이미 노련한 정치평론가인 국민들 각자의 몫이다. 또 멍게 발언에 국민들은 멍들고 소주 한 병 발언에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 것이라면 객관적인 설문조사 집단을 거쳤어야 했다. 총선 때 대파 한 단 875원의 나비 효과를 잊은 대통령의 철없음을 탓하며 그 참담함을 달래기 위해 멍게에 소주 한잔하는 서민들의 피눈물을 한번 생각해보라는 말이 덕담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멍게 앞에서 소주를 떠올리는 대통령의 민생 행보가 공허하다는 정도로 끝냈어야 했다. 혹독한 경기에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상인 앞에서 술안주부터 떠올린 대통령의 모습이 지난 대파 논란까지 덤으로 올려 갈 얘기까지 너무 나간 느낌으로 다가왔다. 

잠깐 사이 잊혀 졌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보낸 당선 축하난도 여기서 멀지 않다. 조국혁신당부터 민주당 국회의원들까지 난을 안 받겠다 하면서 거부하며, 돌려보내는 축하난 거부 릴레이 후유증이 이어졌다. 굉장히 이례적이란 평가 속에도 충분히 지금의 국회분위기 속에 가능할 만한 얘기였다. 사실 기본적으로 무엇인가 당선이 되거나 상임위원장에 선출이 되거나 했을 때 대통령실이나 청와대에서 그동안 보내왔던 축하난이다. 결국 우리 정치가 갈 데까지 간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국회 복도에 이를 내다놓는 의원들의 생각에도 공과 사는 좀 구분해야 된다라는 얘기는 있었지만 이 유행에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던 분위기를 국민들이 모두 헤아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마디로 조국 의원의 경우 뭔가 멋지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한 방의 비판, 이런 걸 하고 싶었을 기회에 찾아온 멍게였다. 대통령 임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도 이를 수습해야 할 국민의힘이 무력해서 벌어진 결과로 보기조차 민망했다. 

진작에 이에 대한 모범답안은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보여준 사례다. "최소한의 공사 구분을 못하는 것"이라고 밝히면서 윤 대통령의 축하난에 물을 주는 모습을 공개한 것. 그리고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 한 마디 더 거들었다. 윤 대통령이라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에게 난을 보내고 싶어서 보냈겠나. 개인적으로 보낸 것이라면 이준석 의원, 조 대표 등 여러 야당 의원에게는 안 보냈을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여서다. 여기에 행정부의 수반이자 헌법기관인 대통령이 입법부의 구성원이자, 역시 헌법기관인 의원에게 ‘기관 대 기관’으로 보낸 것이라는 부연설명까지 잊지 않았다. 다시 말해 윤석열 개인은 존중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직위는 존중해야 한다는 확실한 얘기다. 객관적으로 비슷한 뜻인 이성적인 판단에도 기억해 둬야 할 의원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 스타일을 두고 말이 많다. 이제는 국민의힘 안에서조차 친윤을 떠나서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대통령의 경험과 지나온 경력을 들여다보면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됐다. 그의 걸음걸이 만큼 성격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구든 자기가 살아온 사회적 DNA를 쉽게 못 바꾸는 이유와 같다. 사람은 그저 타고난 그릇만큼 세상을 담기 마련이다. 거기 담기면 다행이고 못 담기면 누구에게나 가는 복이 거기까지란 뜻이다. 그러니까 뽑아 놓고 지금와서 뚜렷한 명분 없이 그저 어디인지 모를 국회의 뜻에 거슬린다하여 3년 남은 임기의 대통령을 탄핵 운운하는 민주당의 그것은 어쩌면 다음 있을 정권의 학습효과를 미리 답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우리는 국제사회의 엄청난 기술적인 술렁임과 정치적인 판단에 휘둘리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는 어렵다는 경제에도 후진적인 정치와 하루에도 몇 번씩 터지는 가십기사에 목숨을 건 듯한 생활정치인들의 가세에까지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벌써 국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의대 정원 파동부터 3김의 부인 의혹으로 선술집의 주제는 모자를 정도다. 야당은 벌써부터 윤 대통령에게 레임덕이란 호칭을 주저 하지 않고 있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지지율도 요지부동이다. 조만간의 미국대선이 이 모든 긴 잠에서 깨날수 있게 할 것인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남은 3년만이 아니다. 누가 돼든 다음은 더 끔찍하고 혹독하게 치러야 할 시간만이 남아있다. 우리가 지금 멍게나 난 타령으로 금쪽같은 지금의 시간들을 보내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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