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 중소벤처기업부 오영주 장관은 2026년부터 전면 시행을 앞둔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한 대비책 마련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철강과 비철금속 분야의 수출 기업 약 1300여 개를 대표하는 협회 및 기업 대표들과 전문가 그리고 정부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회의를 주제 한 오영주 장관은 외교관 출신이어서 그런지 기후위기 관련 이해도와 정책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지금 국내의 기후위기 대응은 무관심과 소극적이라고 밖에 표현하기 힘든 상황인데, 이렇게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장관을 만날 수 있어 매우 반가운 자리였다.

참석한 기업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CBAM에 대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고 예산도 많이 들어가는 상황임을 토로했고, 만약 이것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거래가 중단되거나 추가로 탄소세를 지불하게 되어 원가 상승 요인이 되고 따라서 경쟁력을 잃게 될 수 있음을 우려하였다. 실제로 핀란드나 중국의 철강기업들 중에는 이미 RE100을 달성하거나 거의 달성하는 수준의 준비가 된 기업들도 있음을 확인했고, 이러한 기업과의 경쟁이 더욱 힘들게 될 것임을 우려한 것이다. 특히 자신들의 탄소배출량(Scope 1, 2)이 아닌 공급망의 탄소배출량(Scope 3)까지를 산출하는 데 따른 어려움을 많이 토로하였다. 전문가들도 기업에 컨설팅을 나가 보면 이러한 일에 대응할 만한 여력을 갖춘 기업이 많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하지만 탄소감축은 이제 기업의 필수 항목이 되었고,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고탄소 산업의 사양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에 대응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CBAM 대응은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데이터 확보, 탄소배출량 산정 등 모든 것이 생소하기 때문이다.

이에 중소벤처기업부는 관련 부처와 함께 현재 CBAM 대응이 필요한 기업을 조사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책을 체계적으로 마련하여 곧 시행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체계적으로 준비된 큰 틀의 대책이 마련된 것만으로도 크게 환영할 일이다.

중기부의 정책이 시행되면 그나마 기업들의 CBAM 대응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이런 대책이 보다 효과적으로 추진되기 위해 몇 가지 추가 제안을 해 본다면 우선 대상 기업에 대한 사전 평가가 필요하다. 이른바 탄소 검진을 통해 비교적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기업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기업들 스스로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에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스스로 학습하고 대응하고 앞서 가는 기업들을 따라가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한정된 예산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어느 정도 준비된 기업이라야 컨설팅도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탄소 검진 우수기업은 실질적인 대응책 마련을 지원하고 부실기업은 우선적으로 교육 등을 통해 사전 준비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차별 지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특히 앞으로 상수가 되어버린 기후위기 대응 전문가를 육성하는 것도 당장 해야 할 일이다.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탄소감축평가관리사와 같은 비교적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전문가를 정부가 집중 투자하여 양성하는 것도 개별 기업이 할 수 없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필요한 일이다.

이처럼 CBAM 대응은 기업이 당장에 감당해야 할 일이지만 궁극적으로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보다 공세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그 이유는 기후위기는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한 위협 요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이와 같은 환경변화에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저탄소경제로의 패러다임 대 전환을 적극 추진해야 하며,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될 기후기술 육성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후기술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응축된 수요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처럼 기후기술은 모든 기업이나 국가의 저탄소경제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가운데 게임체인저로 성장하며 미래의 대표적인 유니콘 또는 데카콘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CBAM 대응을 통해 당장의 수출 장애 요인을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체질을 혁신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에 기여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의 역할을 하는 기업을 육성한다면 이 엄중한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뭉쳐야 한다. 그래야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도전이라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지만 과감하게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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