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한국이나 일본 모두 태평양과 동남아에 진출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러다 보니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군수공장도 짓고, 군대도 주둔시키면서 관리했다.

이런 일제강점기 시절의 흔적은 제주 전역에 남아 있다. 특히 해안가 곁의 높은 봉우리와 오름에는 일본인들이 방공호를 만들어 무기를 배치하거나 탄약과 폭탄을 저장한 공간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주정공장수용소 기념관 곁 사라봉에도 방공호로 사용했던 곳이 남아 있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보기 위해 사시사철 관광객이 넘쳐나는 함덕해수욕장 곁 서우봉에도 일본군 진지가 다수 남아 있다. 서우봉의 진지들은 깊이도 깊을 뿐 아니라 해안가에 여러 개의 진지가 북쪽에서 진입하기 위해 접근하는 함선을 바라보며 배치돼 있다. 서우봉은 특별히 관광객들이 방문해서 보거나 즐길 게 없어서 제주 시민들이 여가 시간을 이용하기 위한 곳이다. 그렇다 보니 여행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필자도 올레길을 걷다가 우연히 안내문을 보고 알게 됐다. 서우봉은 많은 여행자가 방문하는 곳이지만 서우봉 위에서 바라보는 함덕해수욕장 풍경을 보기 위해 찾는다. 이렇다 보니 안내지도와 설명이 잘 설치돼 있지만 해안가에 있는 진지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채꽃과 특이한 지형으로 늦겨울과 초봄에 많은 사람이 찾는 산방산 주변도 일제강점기 흔적들이 다수 있지만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나마 제주에 있는 여러 일제강점기 흔적 중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알뜨르비행장과 섯알오름, 송악산이다. 이 세 곳은 올레길 10코스에 있어서 걷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다크투어를 겸해서 많이 찾는 곳이다.(유채꽃이 많이 피는 2월부터 4·3사건이 많이 조명되는 4월까지 방문객이 많다.)

알뜨르비행장은 일본군이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위해 사용했던 곳이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 전에는 미군과 연합군이 일본 본토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최후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비행대가 배치됐었다. 현재 활주로와 주기장 등 일부 시설 잔해, 이십여 개의 콘크리트 격납고가 남아 있다. 격납고가 있는 지역은 개인 소유의 땅들이어서 걷다 보면 격납고 주변에 농사를 짓는 이색적인 풍경을 보게 된다.

알뜨르비행장 가까이에는 섯알오름 학살터가 있다. 학살터는 사실 일본군의 폭탄 창고가 있었던 곳이다. 미군의 공격으로 폭탄 창고가 폭파되면서 큰 웅덩이가 생기며 버려졌었다. 4·3사건 당시 이 웅덩이에 210명의 민간을 학살했다.

일본인들은 섯알오름 정상 부근에 대공포 진지를 만들어 미군의 공격을 막으려고 한 흔적이 남아 있다. 또 섯알오름 지하에 전투사령실과 탄약고, 연료고, 비행기 수리공장, 어뢰조정고, 통신실 등을 넣기 위해 거대한 동굴진지를 만들어 놨다. 섯알오름을 방문하게 되면 이런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송악산도 마찬가지다. 연합군이 제주로 접근하는 걸 막기 위해 함선을 공격하기 위해 진지들을 송악산 여기저기에 만들어 놨다. 이런 흔적인 송악산 아래 주상절리에 인공동굴 형태로 남아 있고, 송악산 둘레길에서도 진지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글·사진=김종화기자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