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人Story

다문화인 200만 시대다. 주위를 둘러보면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관념은 아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중부일보는 이에 대한 간극을 좁히고자 ‘다문화人Story’를 연재한다. ‘다문화人Story’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다문화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소개하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루마니아 출신 교육 사업가 마리나 보이꾸(Marina Voicu·34) 씨. 자칭 ‘세종대왕의 팬’이라는 그는 지난 2014년 한국어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연세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졸업 이후엔 자신의 희망대로 교육자의 길을 걸어왔다. 외국인을 상대로 한국어를, 한국인을 상대로 루마니아어와 영어를 가르쳤다. 어느덧 한국살이 10년 차. 한국에서 인생의 반쪽이 될 배우자도 찾았고 경제적 안정도 이뤄가는 중이다. 고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해본 적이 없을 만큼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도 깊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반려동물을 대하는 태도이다. 일부긴 하지만 쉽게 입양하고 버리는 모습을 볼 때면 불편한 감정이 든다. 현재 유기견 입양을 돕는 동물복지 사회운동가로 활동 중인 그는 잘못된 반려동물 문화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봄기운이 완연한 지난 월요일, 마리나 씨가 운영하는 동탄의 한 스터디 카페에서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마리나 보이꾸 씨와 그의 반려견 라일라.
마리나 보이꾸 씨와 그의 반려견 라일라.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릴 때부터 아시아 문화에 흥미를 느꼈다. 특히 사람들의 생김새가 다르니까 호기심이 생겼다. 처음엔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우려고 시도해봤다. 그런데 혼자 공부하기엔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꽃보다 남자‘란 한국 드라마를 접하게 됐는데 화면에 보이는 글자들이 너무 예뻤다. 그래서 어떤 글자인지 검색해 봤다. 그날부터 세종대왕의 팬이 됐다(웃음). 혼자 한글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 여기까지 왔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 같다. 
맞다. 한국을 정말 사랑한다. 한국에 오기 전인 2011년부터 루마니아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활동을 했었다. 블로그 같은 곳에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루마니아어로 번역해 올렸다. 또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결국 한국에 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입학했다가 가정상황 때문에 자퇴한 경험이 있다. 그러다 한국 정부가 성적이 좋은 외국인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 프로그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장학생으로 선발돼 한국에 올 수 있었다. 2014년 한국에 입국했는데 처음엔 경희대 어학당에서 공부했고 1년 뒤에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한국행을 결정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
모든 사람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한국 사람들이 루마니아에 대해 잘 모르듯 루마니아 사람들도 한국에 대해 잘 모를 때다. ’한국에 가는거냐? 북한에 가는거냐?‘라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또 외국 유학은 돈이 없으면 할 수 없으니까 해외 생활을 걱정하는 지인들도 있었다. 실제로 한국 정부가 준 장학금이 없었으면 유학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마리나 보이꾸 씨. 
마리나 보이꾸 씨. 

-대학 졸업 후 귀국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
귀국은 생각해본 적 없다. 외국인 유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졸업 후 일정 기간 내에 취업하지 못하면 비자 연장이 어려워 귀국해야 한다. 나도 전공을 살려 외국인들을 가르치는 한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한국어 선생님을 외국인으로 뽑는 일은 거의 없지 않나. 취업이 쉽게 될 리 없었다. 그런데 큰 걱정은 안 했다(웃음). 지금은 남편이 된 한국인 남자친구와 미래를 약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인 남편은 어떻게 만나게 됐나.
남편은 대학에서 루마니아어를 전공했다. 나는 남편의 같은 과 후배와 친구 사이였다. 남편이 후배를 통해 루마니아어 연습 상대를 수소문했고 그 후배는 나를 지금의 남편에게 소개해줬다. 그렇게 만나기 시작하다가 감정이 생겨 연애를 시작했다. 루마니아어 연습은 흐지부지됐다(웃음).

-한국에 온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사실 처음 왔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음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동물복지에 관심이 있었고 한국에 오기 전까지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10년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채식 식당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특히 캠퍼스나 기숙사 내 식당에서 내주는 음식에는 거의 다 고기가 들어 있었다. 또 한국에서는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게 경제적으로 더 손해다. 과일 같은 경우는 너무 비싸 유학생한테는 사치나 다름없다. 강제로 다이어트가 되더라. 결국 채식 식단을 포기했다.

-음식 이외엔 힘든 것은 없었나.
외로움도 큰 문제였다. 솔직히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친구를 만들기 너무 힘든 나라다. 친구들이 인생을 너무 바쁘게 산다. 또 지나치게 경쟁적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나보다 어린 친구들의 관심사와 내 관심사가 맞지 않았던 것도 친구를 사귀기 힘들었던 이유였다. 나는 연예인이나 화장에 관심이 없고 그들은 동물 복지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다.

-현재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졸업 이후 다양한 일을 했다. 통·번역 일도 했고 한국어로 루마니아어 학습지, 영어로 한국어 학습지도 만들었다. 영어 스터디 모임에 나가서 튜터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고정 수입이 없어 늘 불안했다. 그러던 중 남편과 상의해 영어 회화를 직접 알려주는 스터디 카페를 차려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오픈 후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현재 2호점도 준비 중이다.
 
-유기견 입양을 위한 봉사활동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래 동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유기된 동물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지금은 보호소에서 안락사 위기에 처한 유기견들을 실제 입양할 수 있는 사람들과 연결해주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보호소에 있는 강아지들의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포스팅하고 입양자나 임시 보호자를 찾는다.

마리나 보이꾸 씨와 그의 반려견 라일라. 
마리나 보이꾸 씨와 그의 반려견 라일라. 

-마리나 씨도 유기견을 입양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었는데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해 쉽게 결정하진 못했다. 그러다가 결혼 후 남편한테 유기견을 입양하고 싶다고 말했고 그렇게 ’라일라‘를 입양했다. 그런데 라일라를 입양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반려동물 문화가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유기견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한국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너무 쉽게 입양하고 너무 쉽게 버린다. 분명 입양할 때는 가족같이 키울 것처럼 데려가지만 상황이 조금이라도 안 좋아지면 반려동물부터 버린다. 이런 경향은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더 심해진 것 같다. 외로움을 느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입양했다가 일상 회복 이후 외부활동이 자유로워지자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에 부담을 느껴 유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지 않고 그저 장식품, 과시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사실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것 자체는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귀엽고 예쁜 것들을 갖고 싶어하니까. 그런데 막상 입양해 키워보면 신경 써야 하는 게 많다. 시간도 비용도 많이 투자해야 한다. 그러다 지치면 포기하는 거다. 안타깝다.

-유기를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

우선 반려동물을 입양하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철저한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무엇이 반려동물을 학대하는 행동인지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강아지를 산책시키지 않고 집에서만 키우는 보호자들이 간혹 있는데 이는 분명히 학대다. 반려동물이 외부활동을 할 수 있도록 산책을 자주 시켜줘야 한다. 또 동물보호법에 대한 처벌이 조금 더 엄격해졌으면 좋겠다. 지금은 동물보호법을 어겼다 하더라도 아주 적은 수준의 벌금만 물면 된다. 처벌이 조금이라도 강력해진다면 버려지는 강아지의 수는 줄어들 것 같다.
 
-반려견을 입양하려는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반려동물 역시 사회성을 가진 동물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동물복지 사회운동가로서의 계획이 있다면 말해달라.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다면 동물 보호단체를 설립하고 싶다. 그래서 버려진 동물들을 구조하는 활동을 꾸준히 해보고 싶다.

이세용기자
사진=김경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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