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러시아 전쟁 나기전 한국으로 유학
2년만에 KAIST기술경영대학원 석사 학위 취득
한국서 박사·취업 기회 과감히 접고 출국
포탄·미사일 폭격에도 고향 지키는 사람들
부모·친구 지하벙커서 수개월 생활하기도
전쟁겪은 한국 눈부신 성장처럼 극복 기대

다문화人Story

다문화인 200만 시대다. 주위를 둘러보면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관념은 아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중부일보는 이에 대한 간극을 좁히고자 ‘다문화人Story’를 연재한다. ‘다문화人Story’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다문화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소개하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우크라이나 출신 유학생 안드리 드미트렌코(Andrii Dmitrenko·28) 씨. 그는 얼마 전 KAIST(카이스트)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거나 취업을 할 수도 있었지만 한 치의 고민 없이 귀국을 선택했다. 고국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국 후 맞닥뜨릴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포탄과 미사일, 폭격을 당해 폐허가 된 건물과 잔해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까지… 불안과 위험이 상존한다. 그래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전장에 나가 싸울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며 이제는 나라를 위해 뭐든 해야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출국을 하루 앞둔 안드리 씨를 중부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한국에는 어떻게 해서 오게 됐나.

학업 때문에 2년 전 처음 한국에 왔다.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는데 다행히 성공적으로 학위를 취득했다. 하지만 내일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예정이다.(인터뷰는 지난달 27일에 진행됐으며, 안드리 씨는 인터뷰 다음날 우크라이나로 출국했다) 지금은 고국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안드리 드미트렌코 씨 (가족의 신변을 걱정한 인터뷰 대상자의 요청으로 얼굴은 최대한 가리고 사진 촬영을 진행했다). 김경민 수습기자
안드리 드미트렌코 씨 (가족의 신변을 걱정한 인터뷰 대상자의 요청으로 얼굴은 최대한 가리고 사진 촬영을 진행했다). 김경민 수습기자

-한국에 더 있을 수도 있지 않나. 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나.

첫 번째는 고국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남자라면 다 비슷한 생각을 할 거다.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실행하는 게 진정한 남자라고 생각한다. 나라를 지켜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고국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 또 오랫동안 보지 못한 부모님과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기도 하다.

-애국심이 큰 것 같다.

전쟁이 1년이나 지속되고 있지만 나라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자책감이 든다. 지금은 빨리 귀국해서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지난달 28일 귀국한 안드리 씨가  보내온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 사진.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된 건축물들.
지난달 28일 귀국한 안드리 씨가  보내온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 사진.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된 건축물들.

-고향은 어디인가.

한국에 오기 전까지 살았던 곳은 수도 키이우(Kyiv)다. 고향은 하르키우(Kharkiv)라는 곳이다. 이번 전쟁을 지켜본 사람들이면 다 알겠지만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지역인 부차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부모님과 친구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살고 있다.

-부모님에 대한 걱정이 많을 것 같다.

전쟁이 일어난 후 부모님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지하 벙커에서 생활했다. 깨끗한 물도, 생필품도 거의 없이 습기만 가득한 곳에서 수개월을 지냈다. 아들로서 당연히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지난해 5월, 우크라이나군의 도움으로 대피소를 나오면서 상황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가끔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통화하며 지역의 사정을 듣곤 한다. 놀라운 것은 그들 모두 고향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향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니 놀랍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일 거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은 용감하다. 처음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한테 전화해 안부를 물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우리는 잘 대피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왜 엄마라고 무섭지 않았겠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나쁘다는 걸 인정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한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주변 누구도 전쟁 때문에 움츠러들지 않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지 1년이 지났다. 본인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역설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던 지난 1년간 사람들에 대해 따뜻함을 많이 느꼈다. 특히 한국에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더 많이 갖게 됐다. 현재 교류하는 한국 내 우크라이나인들은 250명 정도 되는데 가끔 가족 같다는 생각을 한다. 또 전 세계 사람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것에 큰 감동과 든든함을 느낀다.

지난달 28일 귀국한 안드리 씨가  보내온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 사진.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된 건축물들. 
지난달 28일 귀국한 안드리 씨가  보내온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 사진.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된 건축물들. 

-친구들이 전쟁에 참여했다고 들었다. 어떤 얘기를 나눴나.

뉴스에서 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러시아군은 거리낌 없이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고 인프라들을 파괴시켰다. 친구들의 이야기 중 특이한 게 있다면 전장에서 목격된 러시아군 대부분이 슬라브계가 아닌 아시아계라는 점이다. 아마도 중앙아시아에 가까운 주민들이 대거 전쟁에 동원된 걸로 보인다. 대부분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경제적으로 곤궁한 처지에 몰린 사람들일 거다. 그들 처지에선 전쟁에 참여하는 게 큰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겠다.

-우크라이나에게 이 전쟁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우크라이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이후 약 30년이 지났지만 세계는 여전히 우리를 작은 러시아 정도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오래전부터 러시아의 체제에 편입되지 않기 위해 싸워온 역사가 있다. 이번 전쟁으로 그 의지를 세계 곳곳에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

지난달 28일 귀국한 안드리 씨가  보내온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 사진.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된 건축물들.. 
지난달 28일 귀국한 안드리 씨가  보내온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 사진.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된 건축물들.. 

-전쟁이 1년을 넘어가고 있다. 언제쯤 끝날 것으로 보나.

최근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을 올해 안에 끝낼 거라고 했다. 하지만 협상을 통해 종전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는 무력을 통해 러시아군을 몰아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우방국의 지원을 받는다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군에 맞서 더 가열차게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올해가 그 기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쟁이 끝나면 어떤 변화가 있을 것 같나.

70여 년 전 한국의 생활상이 담긴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사진 속 한국인들은 음식도 없는 빈 그릇을 들고 곤궁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칭처럼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한국이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것처럼 우크라이나도 전쟁 이후 큰 발전을 이룰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국민은 그런 저력을 갖고 있다.

이세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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