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때 여행 가자는 부친 말에 한국行
사실은 이주 정착…그때부터 '한국살이'
능곡초 다니며 친구들 도움 많이 받아
영어강사 근무하며 복지센터서 번역 봉사
"외국인도 4대 보험 가입…한국에 감사
국적과 상관없이 공정한 기회 열려 있어"

다문화人Story

다문화인 200만 시대다. 주위를 둘러보면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관념은 아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중부일보는 이에 대한 간극을 좁히고자 ‘다문화人Story’를 연재한다. ‘다문화人Story’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다문화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소개하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3세대 고려인 최크리스티나(23) 씨. 그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자신의 뿌리가 이 땅에 있는 줄 몰랐다. 아버지 손을 잡고 여행 차 들른 한국에서 살게 될 줄은 더더욱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어느새 삶의 터전이 됐다. 그는 현재 영어 강사로 근무하며 틈틈이 용인시 외국인복지센터를 찾아 영어와 러시아어 통·번역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이 사회의 도움을 통해 성장했듯 이주외국인들 또한 같은 도움을 통해 안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는 아무 차별도 느끼지 못할 만큼 공정한 기회를 준 한국 사회에 늘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하는 최크리스티나 씨. 용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 한국에는 어떻게 해서 오게 됐나.

13살 때, 아버지가 여름 방학에 한국여행을 가자고 했다. 사실 그 전엔 한국이란 나라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저 신난 마음으로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입국 후 며칠이 지나자 아버지가 여기서 학교에 다닐 거라고 했다. 처음부터 이주를 염두에 두고 온 것이었다. 우리 가족이 반대할까 봐 일단 여행을 가자고 하셨던 거였다.

- 왜 아버지가 한국에 가서 살자고 했나.

아버지는 건설업계에서 근무하셨는데 월급이 밀리는 경우가 잦았다.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던 것 같다. 한국에 가면 우즈베키스탄에서보다 큰돈을 벌 수 있고, 월급도 밀리지 않을 거란 생각에 결정한 게 아닌가 싶다.

- 한국에 살 거란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할아버지와 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고려인이지만 자라면서 한국에 대해 자세히 듣진 못했다. 물론 집에서 한식을 만들어 먹긴 했지만 그게 한국 문화라고 인식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한국에 살게 될 거란 말을 들었을 때 많이 혼란스러웠다. 아버지는 일단 한국에서 학교에 다녀보고 너무 힘들면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내주겠다고 하면서 나를 달랬다.

- 예고도 없이 한국살이가 시작됐다.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입국해서 새로 다니게 된 학교가 고양에 있는 능곡초등학교였다. 당시만 해도 학교에 외국인 학생은 나와 내 동생밖에 없었다. 선생님들이 많이 난감했다고 한다. 우리 자매 역시 마찬가지 였다. 한국어를 못하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외로움도 한국 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우즈베키스탄에 다시 보내 달라고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적응되기 시작했다.

- 외국에 왔다고 해서 차별이나 따돌림 등을 당하진 않았나.

다행히 그런 경험은 없었다. 그리고 내 외모도 한국사람과 비슷하지 않나(웃음). 오히려 한국어가 서툴다 보니 친구들이 도와주려고 먼저 다가왔다.

- 중도입국 청소년들이 친구들과 잘 지내기 위한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나.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도 처음 왔을 때 문화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교실에서 급식을 먹는 것도 이상했다. 나오는 음식들도 잘 모르는 것들 투성이었다. 입학하고 한 달 정도는 학교에서 점심을 먹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더라.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모르는 게 있으면 주저않고 친구들한테 물어봤다. 다행히 친구들은 살갑게 대해줬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한국문화와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한다면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생긴다.

-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지난주부터 영어학원에 원어민 강사로 근무하고 있다. 첫 직장이다. 지금은 수업을 어떻게 진행하고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우는 중이다. 아마도 수업은 다음주부터 참여할 것 같다.

- 우즈베키스탄 출신인데 러시아어가 아닌 영어 선생님이 됐다.

나는 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용인)에서 영어학을 전공했다. 어렸을 때부터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외국인 신분이다 보니 임용고시를 볼 자격은 없다. 그래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보기로 했다. 아직 일주일밖에 안 됐지만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있다.

- 국적 취득 후 임용고시 볼 계획은 없나.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절차가 간단하지 않다. 고려인이다 보니 처음 거주 비자를 받을 땐 다른 외국인들보다 좀 더 수월하지만 귀화 절차는 차이가 없다. 비용도 많이 들고 조건도 까다롭다. 연간 4천만 원 이상 수입이 있어야 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도 있어야 한다. 언젠가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겠지만 지금은 힘들다.

- 고려인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일어난 후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이 한국을 많이 찾았다. 고려인들에게 한국은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나라’다. 한국 정부는 고려인들이 거주 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 고려인이지만 엄연히 외국인 신분이다. 외국인이라서 불편한 건 없나.

전혀 없다. 한국은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기회가 열려 있는 나라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은 거의 없다. 심지어 4대 보험도 가입할 수 있지 않나. 어디를 가든 똑같은 대우를 받고 똑같은 혜택을 받고 있다.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에게 감사하다.

- 한국에 정착 할 건가.

그렇다. 언젠간 한국 국적도 취득할 것이다. 여권을 받게 된다면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다. 한국 여권만 있으면 비자 없이도 갈 수 있는 나라가 많으니까.

- 앞으로의 계획은.

한국 사람처럼 사는 거다. 나는 정말 한국인들의 삶의 방식이 부럽다. 사실 우즈베키스탄 문화는 한국보다 더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다.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여자 친구들은 아직 23살밖에 안 됐는데 대부분 결혼했다. 사회 풍습이 그렇다. 우리 아버지도 벌써부터 내게 결혼 계획을 묻곤 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개인의 행복과 가족·사회의 행복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런 삶이 부럽다. 나도 내 행복을 추구하면서 가족과 사회에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세용기자

사진=김경민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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