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국립암센터국제암대학원 재학
꿈 좇아 한국 유학 왔다가 애국 활동
목숨 각오하고 매주 히잡 자율화 시위
'일방적 히잡 강요' 이란 정부에 대항

다문화人Story

다문화인 200만 시대다. 주위를 둘러보면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관념은 아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중부일보는 이에 대한 간극을 좁히고자 ‘다문화人Story’를 연재한다. ‘다문화人Story’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다문화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소개하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입고 싶은 옷을 입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것. 당연하고 평범한 이 행동들을 제약받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이란 여성들이다. 지난해 9월 이란의 한 여성은 ‘도덕 경찰’에 구금 됐다가 석연찮은 죽음을 맞았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많은 이란인들이 분노했고 시위는 국경을 넘어 해외로 번져 나갔다. 당연하고 평범한 권리가 그들에게는 목숨을 걸고 싸울만큼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이란 유학생 니우샤 샤리루(Niusha Shariloo) 씨도 그런 인물 중에 하나다. 그는 한국 내 ‘히잡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신상이 알려지면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위험해질 수 있지만 달라질 이란 여성들의 모습을 기대하며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각오다. 그는 총·칼이 난무하는 고국의 시위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동포들에 비하면 너무 부끄럽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자신의 꿈을 좇던 유학생이 자국 정부 규탄 시위를 주도하는 안타까운 현실. 그가 재학 중인 일산 국립암센터국제암대학원을 찾아 이야기를 들어봤다.

Q.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뭔가

다른 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K-팝·드라마를 접하면서 관심이 생겼다. 그러던 중 한국의 역사에 대해 알게됐다. 특히 삼국시대 신라가 실크로드를 따라 페르시아인들과 교류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때는 한국어를 할 줄 몰라 영문으로 된 책만 봤는데, 좀 더 자세히 알고싶어 지난 2020년 서울대어학당에 입학해 한국어를 공부했다. 지금은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Q. 이란에서도 의학과 관련한 공부를 했나

이란에서 의생명공학을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종종 봉사활동을 다니곤 했다. 어느 날 소아암 환자들이 있는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아픈 아이들을 보고 약을 개발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제약과 관련된 전공을 선택했다.

Q. 국림암센터에서는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지금은 유방암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실 대학원생이 신약을 개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가 미래에 유방암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Q. 유학생으로서 힘든 게 있다면

문제가 생겼을 때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게 힘들다. 한국과 이란은 완전히 다르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경험이다. 이란 사람이라는 이유로 문제를 겪는 경우도 있다. 몇몇 친구들은 이란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은행 계좌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나도 6개월에 한 번은 은행을 방문해 신분을 증명해야 한다. 아마 이란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 때문인 것 같다.

Q.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을 활발히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이란이란 나라를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서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은 이란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중동에 있는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란 사람들은 이슬람보다 페르시안 민족이라는 정체성에 더 강한 긍지를 가지고 있다.

Q. 한국에 살면서 가장 좋은 것은 뭔가

자유다. (기자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하고 싶은 것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좋다. 지금 보는 것처럼 나는 히잡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이란에서는 히잡을 의무적으로 써야 한다. 항상 ‘도덕 경찰(종교 경찰)에게 지적당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생활한다. 실제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잡혀간 적도 있다.

Q. 세계 각국에서 히잡 착용의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사실 히잡 착용 자율화를 요구하는 시위는 이전에도 수차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쉽게 진압되곤 했는데, 이번엔 조금 다르다. 100일 이상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경제까지 어렵다 보니 이전보다 정부에 대한 분노가 더 많이 표출되는 것 같다. 안타까운 건 시위가 길어지면서 희생당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엔 6살, 8살의 아이들이 시위 현장에서 숨졌다는 뉴스도 나왔다.

Q. 이슬람인들이 히잡을 꼭 써야 하는 이유는 뭔가

이슬람 교리에 따르면 여성들은 속살을 낯선 남성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심지어 손목이나 발목 등 행동에 따라 살짝 노출될 수 있는 부분도 모두 가려야 한다.

Q. 이란 여성들의 인권이 걱정된다

이란에서 여성 인권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 시위는 여성들의 히잡을 강제로 벗기자는 게 아니다. 단지 히잡을 착용할지 안 할지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히잡을 쓰고 시위에 나가는 여성도 많다. 그저 선택의 자유를 얻고 싶은 것뿐이다.

Q. 히잡 착용 문제만이 시위의 이유인가

지난해 9월 16일 마흐사 아미니라는 여성이 도덕 경찰에 구금됐다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위가 촉발됐다. 처음엔 도덕 경찰의 행태를 비판하고, 히잡 착용의 자율화를 끌어내기 시작됐다. 그러나 지금 시위는 이란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이란 국민들은 이슬람 문화가 고유문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많다. 단지 이란 정부가 국민들을 지배하기 위해 이슬람교를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히잡은 국민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통치하고자 정부가 이용하는 도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지난해 10월 16일 서울 강남구 일대서 진행된 '히잡 시위' 행진 모습. 사진=Niusha Shariloo 제공
지난해 10월 16일 서울 강남구 일대서 진행된 '히잡 시위' 행진 모습. 사진=Niusha Shariloo 제공

Q. 국내에서 벌어진 시위에 매주 참석하는 걸로 알고 있다. 얼굴이나 이름이 알려지면 이란에 있는 가족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겁나진 않나

이란 내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나가는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참여한다. 내가 한국에서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그들의 희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도 변화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매주 참여하고 있다. 시위는 이란 정부가 바뀔 때까지 계속할 것이다.

Q. ‘히잡 시위’가 끝나면 이란에 어떤 변화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나

시위가 끝나더라도 확실한 변화가 이뤄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만 이란에 ‘자유’라는 중요한 가치가 싹틀 거라고 믿는다.

Q.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동포들을 위해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이란에서 시위에 나가는 사람들은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없다는 각오로 참여한다. 그들이 없다면 우리도 시위를 추진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최선을 다해 힘을 보태고 싶다.

취재=이세용 기자
사진=김경민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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